이재명 정부, '소버린AI'로 AI 3대 강국 도약 청사진
AI 모델·전력·인재까지 총괄 육성…범부처 협력 필수
'소버린AI'는 잘못된 구상…소프트웨어 육성 시급 비판도
강훈식 비서실장이 15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인선 발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 강 비서실장, 김현종 안보실 1차장. ⓒ뉴시스
이재명 정부가 'AI 세계 3대 강국'을 목표로 국가 AI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를 확보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대표 AI 기업에 자원을 집중 투입해 초거대 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오픈소스 등으로 공개해 생태계 전반으로 확산시키겠다는 '소버린(sovereign·주권) AI' 구상이 깔려있다.
단순히 몇몇 기업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초대형 국가 사업인만큼 정부를 비롯해 투자·기술 기업, 학계, 연구계가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신설된 'AI정책수석'은 그 가교 역할을 담당하는 자리로, 네이버클라우드 AI 혁신센터장 출신 하정우 수석이 소버린 AI 구현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전망이다.
기술 주권 가진 '소버린AI'로 AI 3대 강국 도약 청사진
18일 업계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가 구상하는 AI 경쟁력 제고 전략은 '소버린 AI'와 맞닿아있다. 소버린 AI는 한 국가가 자체 데이터와 인프라, 인력을 활용해 독립적인 AI 역량을 구축하는 전략으로, 챗GPT, 퍼플렉시티 등 미국 빅테크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내놓는 AI 모델과는 대비된다.
미국 등 글로벌 빅테크에 종속되지 않고, 자국의 언어·문화·가치관을 반영한 AI 모델을 개발·운영함으로써 기술 주권과 데이터 주권을 확보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해외 모델이 빠르게 시장을 장악하는 상황에서 자체 기술 개발이 뒤처지면 해외 기술 의존도는 더욱 커진다. 개인, 기업 등 민간 분야뿐 아니라 국방·의료 등 공공 분야의 광범위한 데이터가 해외로 넘어가는 안보 리스크로도 번질 수 있다.
기술 주권 이슈에서 출발한 소버린 AI는 이제 그 영역이 정부 차원의 국가 전략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이재명 정부 들어 본격적인 국가 프로젝트로 가시화되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할 하 수석은 그간 GPU 인프라 확보, 소수 기업에 다량 GPU 배포, AI 모델 오픈소스 공개 등을 주장해왔다. 그는 "1만장의 GPU를 500장씩 20곳에 주는 것보다 1곳에 줘야 강력한 성능의 모델이 나올 수 있다", "좋은 AI 모델을 오픈소스로 공개해서 AI 기술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 마디로 GPU 집중 지원을 받은 대표 기업이 우수한 AI 모델을 만들면,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민간 서비스 출시로 이어지게 하자는 'AI 낙수효과' 전략이다.
이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정부는 올해 GPU 1만장 규모로 추진 중인 '국가AI컴퓨팅센터(데이터센터)' 구축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민간 기업들의 반응이 아직 소극적이어서 두 차례 유찰된 상황이나, 향후 정부가 입찰 조건을 수정해 AI 인프라 속도전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따라 네이버, LG,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LG CNS, 삼성SDS 등 주요 ICT·클라우드 대기업들이 정책 수혜의 중심에 설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네이버는 초거대 언어모델(LLM) '하이퍼클로바X' 개발과 대규모 데이터센터 구축·운영 경험을 갖췄고 LG도 AI 연구원을 통해 LLM '엑사원(EXAONE)'을 개발했다.
LG CNS는 이지스자산운용과 경북에 200MW(메가와트) 규모의 데이터센터 건설을 추진중이며 국내 지역 5곳에 데이터센터를 운영중인 삼성SDS도 작년 말 구미에 신규 데이터센터 건립을 위해 부지를 매수했다.
'하이퍼클로바X' 로고.ⓒ네이버
국내 통신 3사 역시 AI 데이터센터(AIDC), AI 콘택트센터(AICC) 등 통신 인프라와 AI 융합 사업에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최근 SK그룹은 클라우드 기업 아마존웹서비스(AWS)와 함께 울산 미포 국가산업단지에 AIDC를 짓기로 했다. 현실화된다면 GPU 6만장이 투입되는 국내 최대 규모의 AI 전용 데이터센터가 될 전망이다.
이들 기업은 민간 기술과 정부의 GPU·AI 인프라가 결합하면 초대형 AI 모델 개발, 데이터센터 확장, AI 서비스 상용화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 자산인 GPU를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빌려 개발비를 절감하는 한편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모델을 빠르게 출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정호윤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에서도 기업들의 AI와 자체적인 기업 데이터를 활용해 특화된 AI 모델에 대한 수요, 혹은 기업에 특화된 솔루션 개발과 같은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며 "이를 위해 고성능 GPU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AI 모델·전력·인재까지 총괄 육성…범부처 협력 불가피
다만 GPU·AI 컴퓨팅센터 등 인프라를 집중 지원한다고 해서 AI 생태계가 알아서 커질 것이라는 낙관론은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초대형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모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026년까지 전 세계 데이터센터, AI 서비스에 들어가는 전력 소비가 1000TWh(테라와트아워)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는 일본 전체 연간 전력 소비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AI 서버만 해도 연간 130TWh 이상을 사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따라서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을 위한 부지 및 발전소 구축·운영이 처음부터 제대로 설계되지 않으면 AI 강국 도약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 인허가, 주민 반발 등의 문제에 새롭게 부딪칠 우려도 상존한다.
LG유플러스 ‘인공지능 데이터센터(AIDC)’ 조감도ⓒ파주시
이재성 중앙대 AI학과 교수는 "컴퓨팅센터 전기를 감당할 수 있는 전력 그리드(송전·배전망 시스템)가 마련돼야 하는데 현재로선 그렇지 않다"면서 "현 정부 기조인 신재생에너지의 경우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SMR(소형모듈원자로)과 같은 원전 기술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AI 인재 확충·양성도 시급한 문제다. 아무리 인프라를 크게 늘린다고 하더라도 이를 운용할 인력이 부족하면 실효성이 떨어진다. 이 교수는 "국내 AI 산업을 리딩하고 발전시킬 한국형 인재 양성으로 포커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과적으로 소버린AI 국가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AI 기술, 인프라, 예산, 전력, 인재 양성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려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와 산하 기관, 민간 기업 간의 유기적 협력 체계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구체적으로 기획재정부, 환경부, 외교부, 국토교통부, 한국전력 등은 범부처TF를 구축해 예산 집행과 GPU 해외 협상, 데이터센터 및 전력 부지 확보·운영 등에서 역할을 맡고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등은 컴퓨팅 파워 측면에서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버린AI'는 잘못된 구상…소프트웨어 육성 시급 비판도
AI 강국을 위해서는 '소버린AI' 접근 보다는 소프트웨어 육성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있다.
문송천 카이스트 명예교수는 "소버린 AI 개념은 국내 시장용 모델을 억지로 쓰게 만들기 위한 구실에 가깝다"며 "특히 정부 주도의 바우처 나눠주기식 생태계 확장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생성형 AI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AI 모델을 만든 뒤 국민에게 무료 바우처를 나눠주는 방식으로 AI 생태계를 육성하겠다는 하 수석의 구상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다. 대신 문 교수는 "실제 산업계 수요에 맞는 데이터 정제 툴을 개발·보급하는 것이 정부가 먼저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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