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시마 아키히사 일본 총리 보좌관이 16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주한일본대사관 주최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의 최측근인 나가시마 아키히사(長島昭久) 일본 총리 국가안보담당 특별보좌관이 한국에 '역사문제 관리를 위한 3대 원칙'을 제시한 것은 이재명 대통령이 공언한 실용외교에 대한 탐색전인 동시에 자국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약 1개월 앞으로 다가온 일본의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두고 한일 관계의 안정적 관리,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와의 관세 협상 등 외교 성과를 부각해 유권자의 표심을 얻으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공명 연립 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총리의 당내 입지가 크게 약화해 '포스트 총리' 논의가 본격화할 수 있다.
김원진 한국외교협회 이사(전 국립외교원 일본 고문)는 17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통화에서 "일본 내각 고위 관계자의 3대 원칙 제안은 일본이 전형적으로 취하는 '외교 탐색전'이라며 "경제·문화 교류와 과거사·영토 문제를 분리해 접근하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전략이 실제로 작동하는지 등을 지켜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지난 2월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회담한 후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로이터=뉴스1
앞서 나가시마 보좌관은 전날 최종현학술원이 주최한 특별강연에서 '역사 문제 관리를 위한 3대 원칙'을 밝혔다. 3대 원칙은 △단기적 이해득실에 얽매이지 말고 양국의 장기적 전략 이익을 잊지 말 것 △정부의 담화를 비롯한 과거의 합의를 최대한 존중하고 결코 후퇴하지 말 것 △양국 국민들을 용기를 가지고 설득해 나갈 것 등이다.
그가 제시한 3대 원칙 중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과거 합의를 최대한 존중하고 결코 후퇴하지 말 것'이란 대목이다. 나가시마 보좌관의 제안은 과거 일본 내각이 견지해온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 입장은 유지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동시에 일본으로선 윤석열 정부가 2023년 3월 마련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배상 방법인 '제3자 변제안' 등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중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일본 내각은 1998년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가 한국의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를 문서화했고, 2010년 간 나오토 일본 전 총리는 한국 식민지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과의 뜻을 밝혔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집권 이후 일본에선 한국의 과거사 문제에 직접적으로 사과의 뜻을 표하는 대신 기존 내각의 입장을 유지하겠다고만 밝혔다.
한국갤럽-머니투데이 2025년 대일 인식조사. / 그래픽=윤선정 디자인기자
윤덕민 전 주일대사는 "역사 문제가 한일관계 논의의 장을 과하게 지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이시바 내각이 '마음으로의 사죄' 등과 관련한 직접적 표현을 안 썼는데 그간 한국이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에 일본도 일부 호응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윤 전 대사는 역사 문제가 미래 협력에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 2기 출범에 따른 자유무역 질서의 변화 뿐 아니라 러시아와 북한의 밀착, 중국의 부상 등 대외환경이 급변하고 있다"며 "한일 양국이 경제 협력은 물론 한미일 안보협력을 중심으로 양국 간 안보 협력을 심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가시마 보좌관의 3대 원칙 제안이 일본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 움직임이란 분석도 있다. 일본은 다음달 20일 참의원 선거를 치른다. 이 선거에서 자민당 등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거나 큰 폭으로 의석을 잃을 경우 총리의 리더십과 당내 입지가 약화할 수 있다. 실제로 과거 고이즈미 총리 시절 자민당이 참의원 선거에서 패배하자 총리의 정치적 위기가 심화됐고 당내에서 후임 논의가 시작된 전례가 있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일본 정치인들도 한국에 사과를 할지 말지 유권자의 눈치를 봐야 하는데 현재로선 사과할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며 "일본의 전쟁세대는 한국에 미안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 세대는 가버리고 할아버지에게 전쟁 경험을 들은 세대가 왔다. 한국이 일본에 계속해서 사과를 요구하는 것도 국격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갤럽-머니투데이 2025년 대일 인식조사, 일본의 과거사 사과에 대한 견해. / 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김인한 기자 science.inh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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