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철의 안보이는 안보
서북도서방위사령부가 지난해 11월6일부터 8일까지 서북도서방어훈련을 실시했다. 해병대 출신들은 해군은 해상전투를 맡고, 해병대는 바다와 땅을 넘나들며 상륙작전을 맡기 때문에 해군과 해병대를 별개의 군대로 여긴다. 해병대사령부 제공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10일 해병대를 독립적인 ‘준 4군 체제’로 개편하고, 해병대사령관의 위상을 격상하겠다고 공약했다. 해병대 독립은 해병대를 해군으로부터 분리해 3군 체제(육해공군)를 4군 체제(육해공군 해병대)로 만들자는 것이다. 육해공군 참모총장 계급은 대장(4성 장군)이고 해병대사령관의 계급은 한 계급 낮은 중장(3성 장군)인데, 해병대사령관을 대장으로 올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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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해병대사령관이 국방부 출입기자들을 만날 때면 ”군 관련 기사를 쓸 때 주어를 ‘육해공군’이 아니라 ‘육해공군 해병대’로 해달라”고 말했다. 이 부탁에는 해병대 독립 염원이 담겨있다.
해병대 출신이 아닌 사람들은 ‘해병대 독립’이 무슨 이야기인지 어리둥절하다. 해병대 출신들은 해군은 해상전투를 맡고, 해병대는 바다와 땅을 넘나들며 상륙작전을 맡기 때문에 해군과 해병대를 별개의 군대로 여긴다. 육군 장교가 공군 전투기를 조종할 수 없고 공군 장교가 육군 중대장, 대대장을 맡을 수 없듯히 해군이 해병대를 지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해병대의 정서와 달리 해병대는 해군 밑에 있다. 국군조직법 제2조 1항은 “국군은 육군, 해군 및 공군(이하 “각군”이라 한다)으로 조직하며, 해군에 해병대를 둔다”고 되어 있다. 이 법 10조 3항은 “해병대에 해병대사령관을 두며, 해병대사령관은 해군참모총장의 명을 받아 해병대를 지휘·감독한다”고 되어 있다.
지난달 15일 해병대가 해병대사령부에서 창설 76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해병대사령부 제공
해병대의 운명이 기구해진 것은 3차례 쿠데타와 얽혔기 때문이다. 첫번째는 ‘5·16 쿠데타 선봉’이란 굴레다. 1961년 5월16일 새벽, 박정희 전 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김포에 주둔한 해병 제1여단이 선봉을 맡았다. 당시 해병대는 한강대교에서 쿠데타 진압에 나선 육군 헌병대를 교전 끝에 제압하고 서울 강북 도심에 진입해, 치안국(현재 경찰청) 등을 점령했다.
두번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하려고 1972년 10월 일으킨 친위 쿠데타인 10월 유신이다. 박 전 대통령은 유신 다음해인 1973년 10월 해병대사령부를 전격 해체하고 해병대를 해군에 통합시켰다. 해병대사령관 직책은 사라지고 해군참모총장의 부하인 해군 제2참모차장이 해병대를 지휘했다. 해체 이전까지 해병대 사령관은 대장이었는데 해군 제2참모차장은 중장으로 계급이 낮아졌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자립경제 발전을 위해 경제적으로 군을 관리 운영해야 한다”는 이유로 해병대사령부를 해군에 통합시켰다. 하지만 당시 군 내부에서는 쿠데타로 집권한 박 전 대통령이 해병대가 5·16 때처럼 쿠데타군 선봉으로 나설 것을 두려워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해병대가 1965년부터 6년 넘게 베트남전에 참전해 수많은 실전 경험을 쌓는 등 전투력이 막강해지자 이를 견제하려 했다는 것이다. 해병대 해체 이후 전력관리의 문제점이 나타나 상륙작전에 관한 지휘구조를 개선할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1987년 11월 해병대사령부가 재창설됐다. 해병대 예비역들은 이를 두고 “해병대는 죽었다가 부활한 군대”라고 말한다. 14년만에 해병대사령부가 부활했지만, 여전히 해병대는 해군 소속이다.
지난 1973년 10월10일 해병대사령부 해체 및 해병대사령관 전역식이 열리고 있다. 국가기록원
세번째는 1979년 10월 박 전 대통령이 사망한 뒤 전두환 등 신군부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불법 체포한 12·12 군사반란이다. 당시 해병대가 서울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경비하고 있었다. 해병대가 경비를 맡은 것은 1962년 해병대사령관 공관이 들어서는 등 한남동 공관 터가 원래 해병대 땅이었기 때문이다. 12·12 군사반란 때 해병대 공관 경비대는 전두환 쪽 반란군과 끝까지 싸웠다. 한남동 공관 터는 해병대가 군사반란에 맞서 민주헌정 질서를 수호한 상징적 장소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대통령실을 서울 용산으로 옮기면서 한남동 외교부 장관 공관을 대통령 관저로, 해병대사령관 공관을 경호처장 공관으로 가져갔다. 지난해 12·3 내란사태 때 윤석열 전 대통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체포영장 집행에 불응해 한남동 관저에서 경호처를 방패삼아 농성을 벌였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체포영장 집행에 불응하며 버틴 한남동 대통령 관저. 연합뉴스
당시 여석주 전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예비역 중령)은 지난 1월 한 세미나에서 “해병대의 역사와 피눈물이 어우러진 한남동 일대에서 벌어지는 혼돈과 추태에 전우분들 모두 분노와 비통을 누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남동 땅은 6·25전쟁 후반, 장단 사천강 일대를 방어하던 해병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해병대 직할부대가 배치됐던 곳이고, 인천상륙작전과 강원 양구 도솔산 전투를 기억하는 국민의 모금으로 해병대 사령관의 첫 공관을 지었던 자리였다”고 말했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 2월2일 페이스북에 ‘해병대 공관 복원해야’란 글을 올려 “한남동 공관촌은 해병대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는 장소였다”며 “내란세력의 무법지대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경호처장 공관을 원래 주인인 해병대공관으로 복원하는 게 해병대의 역사를 존중하고 자부심을 되찾는 첫 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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