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서울 김기동 감독 photo 뉴시스
기성용(36·포항 스틸러스)은 '원클럽맨'이 아니다. '원클럽맨'이란 '프로 생활을 오직 한 클럽에서만 보내는 사람'을 뜻한다. 예외는 있다. 한국 남자에겐 병역의 의무가 있다. 한국에선 병역으로 인한 소속팀 이탈은 '팀을 떠난 것으로 보지 않는 문화'가 있다. 최철순처럼 군 복무 시절 제외 전북 현대에서만 뛴 선수는 '원클럽맨'으로 인정한다. 최철순은 올해로 전북 20년 차다.
기성용은 2006년 FC 서울 유니폼을 입고 이듬해 프로에 데뷔했다. 기성용은 2009시즌을 마친 뒤 유럽으로 향했다. 기성용은 셀틱 FC(스코틀랜드), 스완지 시티, 선덜랜드, 뉴캐슬 유나이티드(이상 잉글랜드), 레알 마요르카(스페인)를 차례로 거쳤다. 기성용은 2010년 1월부터 2020년 6월까지 유럽에서 활약했다.
기성용의 전성기였다. 국가대표팀에서 활약만 봐도 알 수 있다. 기성용은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한국의 16강 진출에 앞장섰다. 2015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과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선 대표팀 주장을 맡았다. 기성용은 2012 런던 올림픽(동메달), 2014 브라질 월드컵 등에서도 핵심이었다.
기성용은 2019 아시안컵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이때부터 유럽에서의 경력도 마무리에 들어갔다. 기성용은 2019~2020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전반기 뉴캐슬 소속으로 리그 3경기에 출전했다. 2019~2020시즌 후반기엔 마요르카로 이적해 반등을 노렸다. 하지만 기성용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1경기에서 딱 8분 뛰었다. 기성용은 2020년 7월 서울로 돌아왔다. 기성용은 2021시즌부터 2023시즌까진 매 시즌 리그 35경기를 뛰었다. 2024시즌엔 부상으로 K리그1 20경기 2골 4도움, 2025시즌 전반기엔 햄스트링 부상으로 K리그1 8경기 출전에 머물렀다.
포항 이적, 최종 선택은 기성용이 했다
지난 4월 1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서울과 대전하나시티즌의 경기. 기성용은 경기 시작 31분 만에 이승모와 교체됐다. 기성용이 햄스트링에 불편함을 느꼈기 때문. 기성용은 이후 팀 전력에서 이탈했다. 기성용이 재활을 마친 때였다. 기성용은 훈련을 정상적으로 소화했지만, 출전 기회를 받지 못했다. 기성용은 서울 김기동 감독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김 감독은 기성용에게 "출전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란 의사를 전했다. 기성용은 자신이 팀 전력에서 배제된 것을 확인한 뒤 은퇴를 고민했다.
기성용은 가족과 지인의 만류로 생각을 바꿨다. 현역 연장의 길을 택한 것이다. 기성용은 포항으로 향했다. 복수의 축구계 관계자에 따르면 기성용은 포항 외에도 여러 구단과 접촉했다. 이 중 기성용을 원했던 게 포항이다. 기성용이 K리그에선 처음 서울이 아닌 다른 팀 유니폼을 입게 된 것이다.
서울 팬들이 분노했다. 팬들은 경기도 구리 서울 훈련장에 수십 개의 근조화환을 보냈다. 서울의 모기업인 GS그룹(GS리테일) 본사 앞에선 트럭 시위가 있었다. 대형 모니터에 구단과 김 감독에 대한 비난 문구가 채워졌다.
팬들의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6월 29일 서울 홈에서 열린 포항과의 맞대결이었다. 기성용의 이적이 알려진 뒤 처음 열린 경기였다. 경기 시작 3시간 전인 오후 4시 서울월드컵경기장 북측 광장에선 약 160명의 팬이 참석한 '무능, 불통, 토사구팽 구단 FC 서울 장례식 집회'가 열렸다. 집회 주최 측은 '해당 집회가 정식으로 신고됐다'는 걸 강조했다.
경기 시작 직전 엄청난 야유와 비판 걸개가 내걸렸다. 김 감독이 소개될 때와 전광판에 잡혔을 땐 '김기동 나가'가 울려 퍼졌다. 경기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서울 팬들은 김 감독에겐 야유를 퍼붓고, 기성용의 응원가를 부르기도 했다.
서울은 포항을 4 대 1로 이겼다. 서울이 올 시즌 가장 많은 득점을 터뜨린 경기였다. 서울 팬들의 분노는 멈추질 않았다. 경기 후 선수단 버스를 가로막았다. K리그에서 유행처럼 번진 이른바 '버스 막기'였다. 선수단 버스가 30분 이상 지하주차장 출입구를 벗어나지 못했다. 팬들은 버스를 막고 '김기동 나가'를 주야장천 외쳤다. 도를 넘어선 거친 언행을 접하는 건 현장에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경찰과 소방까지 출동했다.
'버스 막기'는 서울이 '김 감독이 참석하는 간담회를 7월 1일 진행'하기로 하면서 마무리됐다. 김 감독은 선수단 버스에서 나와 "간담회를 통해서 다 말씀드리겠다"며 "죄송하다"는 메시지를 전했다.미드필더 기성용의 프로축구 K리그1 포항스틸러스 이적에 뿔난 K리그1 FC서울 팬들이 지난 6월 2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진행된 포항과의 하나은행 K리그1 2025 21라운드에서 김기동 서울 감독을 향한 비판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photo 뉴시스
김기동 감독이 왜 죄송해야 하나
'김기동 나가'를 외치는 서울 팬들의 반응은 당황스럽다. 이는 축구계의 공통된 반응이다. 서울은 축구를 '잘했던' 팀이다. 서울이 마지막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린 건 2016시즌 K리그1에서다. 서울은 이후 우승컵은커녕 강등을 걱정해야 하는 성적을 반복했다. 2018시즌엔 창단 첫 승강 플레이오프를 경험했다. 2019시즌 3위를 기록한 이후엔 4시즌 연속 K리그1 파이널 B에서 잔류를 위한 사투를 벌였다.
김 감독은 그런 서울을 파이널 A와 아시아 무대로 복귀시켰다. 김 감독은 2024시즌 서울 지휘봉을 잡았다. 서울은 2024시즌 K리그1 4위를 차지했다. 서울이 파이널 A에서 시즌을 마친 건 2019시즌 이후 이때가 처음이다. 서울은 2020시즌 이후 처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에도 출전한다.
기성용이 서울 복귀 후 출전 시간이 확 줄어든 때가 2024시즌이다. 3시즌 연속 K리그1 38경기 중 35경기에서 뛰었던 기성용이 2024시즌엔 리그 20경기 출전에 그쳤다. 기성용이 서울로 돌아와 파이널 A를 경험한 건 2024시즌이 유일하다.
기성용은 팀 핵심으로 2025시즌을 시작했다. 왕성한 활동량이 강점인 정승원을 영입해 기성용의 짝으로 활용했던 건 기성용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기성용은 지난해에도 문제가 됐던 부상이 반복되면서 팀 중심에 서지 못했다. 이후 김 감독으로부터 '전력 외' 판정을 받은 것이다.
감독은 선수단을 이끄는 리더다. 선수 선발과 팀 운영은 감독 고유의 권한이자 역할이다. 김 감독이 팬들의 반발이 두려워 전력 외로 판단한 기성용을 주전으로 계속 기용했다고 치자. 성적이 따르지 않는다면,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김 감독이다. 팬들의 반발이 두려워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똑바로 하지 않는 건 감독의 책임과 자격이 없는 것이다.
'한국에선 서울에서만 뛰었던 기성용을 향한 김 감독의 배려가 부족했다'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은 순위 경쟁이 한창이다. 서울이 올 시즌 전반기 축구계 기대보다 부진한 성적을 기록한 건 맞다. 하지만 서울은 최근 5년 동안 딱 한 번 파이널 A에 들었던 팀이다. 김 감독이 서울 부임 첫해 해냈던 일이다.
올 시즌 서울의 흐름이 나쁜 것도 아니다. 서울은 올 시즌 K리그1 21경기에서 7승 9무 5패(승점 30점)를 기록하고 있다. 서울은 K리그1 12개 구단 중 6위로 2위 대전하나시티즌과의 승점 차가 5점에 불과하다. 작년보다 더 좋은 성적이 가능한 흐름이다. 서울은 6월 A매치 휴식기 후 리그 4경기 무패(2승 2무)를 기록하며 가라앉았던 분위기를 바꾸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기성용은 없었다.
김 감독이 기성용을 전력 외로 판단한 건 존중받아야 한다. 김 감독은 우승컵을 들어올리기 위해 서울행을 택했다. 서울도 2016년 이후 끊긴 우승을 위해 김 감독을 사령탑에 앉혔다. 서울에서의 은퇴가 아닌 주축 선수로 뛰길 원해 포항으로 이적한 기성용의 선택 역시 존중받아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서울은 기성용에게 레전드 대우를 했다
김 감독 못지않게 큰 비판에 시달리는 게 서울이다. 기성용이 '서울에서 은퇴하고 싶다'는 꿈을 이루지 못하면서, 맹비난을 받는다. 박주영, 데얀, 이청용, 오스마르 등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서울 팬들이 서울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길 바랐던 이들이다. 아디, 고요한 등 서울에서 더 뛰길 바랐지만, 은퇴했던 선수의 이름도 나온다.
기성용의 경우를 보자. 서울은 팀 간판으로 성장한 기성용을 2009년 12월 셀틱으로 보냈다. 당시 서울은 기성용이 1년 더 팀을 위해 뛰어주길 바랐다. 기성용은 본래 2009년 여름 셀틱으로 향하길 원했다. 서울과 기성용은 2009시즌을 마치고 셀틱으로 향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서울은 유럽에서 전성기를 보내고 온 기성용에게도 최선을 다했다. 기성용은 서울에서 내국인 선수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받았다. 서울은 기성용에게 팀 간판스타로서 부진한 성적에 대한 책임을 물은 적도 없다. 포항 이적 과정에선 자유계약선수(FA)로 갈 수 있도록 했다. 서울과 기성용의 계약은 만료된 게 아니었다. 서울이 계약을 우선했다면, 포항에 이적료를 받고 기성용을 팔 수도 있었다.
기성용은 서울과의 계약이 남은 상태에서 새로운 팀을 찾아갔다. 서울이 이를 팀에 대한 불만 표시로 간주했다면, 기성용을 남은 계약 기간 동안 2군에만 머물게 할 수도 있었다. 기성용의 포항 이적으로 이름이 거론되는 박주영, 데얀, 이청용, 오스마르, 아디, 고요한 등도 최종 선택은 선수가 했다.
K리그는 '프로스포츠'다. 프로스포츠는 비즈니스다. 구단은 선수에게 연봉을 지급한다. 선수는 구단에서 받는 연봉으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는다. 어떠한 구단, 선수든 계약 과정에선 이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계약은 보기 어렵다. 보통 더 간절한 쪽이 더 많이 양보한다. 계약은 그렇게 성사된다.
기성용은 더 뛰길 원했다. 박주영, 데얀, 오스마르도 마찬가지였다. 이청용은 유럽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는 과정에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울산 HD를 택했다. 아디, 고요한은 서울에서 은퇴를 선택했다.
GS그룹은 우승 상금이 여전히 5억원에 불과한 K리그에서 연간 수백억원을 서울에 쏟아붓는다. 1983년 출범한 K리그에서 수익을 올리는 팀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구단이 매년 적자다. 이 적자는 모기업의 지원으로 메운다.
새로운 기업이 K리그에 뛰어들지 않는 가장 큰 이유다. 1995년 12월 삼성이 수원 삼성을 창단한 이후 K리그에 등장한 기업은 이랜드, 은행권인 하나은행 2개뿐이다. 축구계는 이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지자체 예산에 의존하는 시·도민구단을 우후죽순 만들어내왔다. 끝이 아니다. 앞으로도 K리그엔 2개 이상의 시·도민구단이 더 창단될 것으로 보인다. K리그엔 지자체 예산 없인 운영이 불가한 구단(16개)이 기업구단(10개)보다 많다.이런 판에서 어디까지 배려해야 하는가. 배려는 권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