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강해인 기자] 좀비물의 외연을 확장한 영화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개봉 2주 차를 맞은 좀비 영화 '28년 후'가 차곡차곡 관객수를 쌓으며 박스오피스에서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지난 19일 개봉한 '28년 후'는 개봉 이후 2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공포 영화의 시즌이 왔음을 알렸다.
27일 박스오피스에서 '28년 후'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영화 중 유일하게 박스오피스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는 호러 장르, 그리고 청소년 관람 불가라는 한계 속에서도 꾸준히 관객을 동원하며 입소문을 타고 있다. 이 영화엔 어떤 매력이 있던 걸까.
최초의 좀비는 '움직이는 시체'에 가까웠다. 창백한 얼굴을 비롯해 부패한 외형과 느린 움직임이 시그니처였다. 마니아들에게 사랑받던 좀비는 이후 많은 진화를 거듭하며 대중문화의 한 축을 이루는 장르가 됐다. 그리고 대니 보일 감독의 '28일 후'는 달리는 좀비라는 설정으로 이 장르의 패러다임을 바꿨던 영화로 평가받는다.
대니 보일이 다시 연출을 맡은 '28년 후'는 분노 바이러스가 퍼진 뒤 망가진 세계에서 태어난 소년의 이야기를 전개한다. 10대 초반의 스파이크(알피 윌리엄스 분)는 아버지와의 갈등을 겪은 뒤 어머니와 함께 집을 떠난다. 그는 진화한 감염자가 서식하는 본토에 발을 들이고, 그곳에서 끔찍한 존재들과 마주하게 된다.
일반적인 좀비 영화에서는 주인공들의 공간에 좀비가 나타나 삶의 터전을 초토화시킨다. 그리고 주인공들이 좀비로부터 도망가는 서사를 볼 수 있다. 하지만 '28년 후'는 주인공이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좀비의 공간에 찾아간다. 인간과 좀비의 대립을 넘어 한 소년이 가장이자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서사를 담았다. 볼거리만큼이나 드라마도 탄탄하게 구축한 작품이다.
'28년 후'는 전편보다 진화한 좀비들이 등장해 색다른 긴장감을 형성한다. 느린 움직임으로 기어 다니며 벌레를 잡아먹는 좀비, 인간을 찢어버릴 정도의 괴력을 가진 좀비들이 각자의 개성을 살려 스파이크의 목숨을 노린다. 이중 무리를 지어 조직화된 모습을 보이는 좀비들은 특히 흥미롭다. 좀비도 이 세계에 적응해 진화해 간다는 걸 볼 수 있으며, 기존 좀비 장르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설정이다.
스파이크는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두 집단을 경험한다. 하나는 분노 바이러스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들을 노리는 좀비 집단이었다. 영화 초반 스파이크는 생존자들이 좀비를 사냥하며 폭력성을 드러내고, 피에 열광하는 모습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이후 스파이크는 이성을 잃은 좀비들을 보게 되는데 이때 관객은 묘한 기시감을 느낄 수 있다.
'28년 후'에서 생존자들과 좀비 집단이 보여준 광기가 닮았다는 점은 흥미롭다. 폭력성과 생존 욕구만이 남은 좀비를 통해 '28년 후'는 인간 집단의 극단적인 모습을 돌아보게 했다. 대니 보일은 '28일 후'에 이어 인간의 분노와 집단화된 광기에 여전히 관심이 많았다. 좀비 장르의 개념을 재정립했던 대니 보일은 평범한 좀비물 관심이 없었다.
'28년 후'에서 대니 보일은 소년의 시선에서 망가진 가정과 사회, 그리고 영국을 카메라에 담으며 현실에 경고를 던졌다. 다소 폭력적이고 불편한 이미지와 이야기를 경유해 인간의 내면과 오늘을 환기하게 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보편적인 좀비 영화와는 결이 달랐다. 물론, 이 과정에서 마이너한 감성도 보여 호불호는 크게 갈릴 것으로 보인다.
‘28년 후’는 다소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거친 편집, 인체를 훼손하는 기괴한 이미지, 그리고 B급감성으로 무장한 액션 장면 등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 한 작품이다. 일반적인 대중 영화에서 벗어난 이런 이미지를 보는 관점에 따라 영화를 향한 관점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영국의 상황과 문화를 잘 알 수록 보이는 게 많다는 점도 타국의 관객에겐 벽으로 느껴질 수 있다.
'28일 후'의 세계관을 대폭 확장하며 좀비물의 외연을 넓힌 대니 보일의 도전은 이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8년 후’는 마지막에 새로운 이야기를 예고하며 막을 내려 속편을 기대하게 했다. 좀비물에도 작가적인 시선을 담아 온 대니 보일의 어떤 독창적인 이미지와 메시지를 가진 영화로 돌아오게 될까.
강해인 기자 khi@tvreport.co.kr / 사진= 영화 '28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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