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6대3 판결…“개별 사건에 국한해 법적용해야”
출생 시민권 제한 위헌성 여부 판단은 유보
트럼프에 힘 실어준 대법원...트럼프 "거대한 승리"
[뉴욕=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미국 연방대법원은 2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한 ‘출생 시민권 제한’ 행정명령과 관련해 하급심 법원들이 내린 전국 단위 금지명령의 범위를 제한하라고 판결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간 이민 정책을 중심으로 연방 법원의 전국적 금지명령에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해왔으며, 이번 판결은 이러한 입장에 법적 정당성을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일부 지역에서는 출생 시민권 제한이 사실상 다시 허용된다. 다만 대법원은 출생 시민권 제한의 위헌성 여부에 대한 판단은 유보됐다.
대법원은 이날 보수 성향 대법관 6명의 찬성, 진보 성향 3명의 반대로 하급심 법원이 연방정부 정책에 대해 미국 전역에 효력을 중단시키는 가처분 명령을 내릴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다만 정책 자체의 위헌 여부에 대한 판단은 유보했고, 정책 시행도 판결일로부터 30일간 유예된다. 이에 따라 소송을 제기해 가처분 결정을 받아낸 22개 주와 워싱턴DC를 제외한 28개 주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30일 이후부터 시행될 수 있게 됐다.
이번 판결은 메릴랜드·매사추세츠·워싱턴주 등 연방 지방법원이 트럼프 행정명령에 대해 전국적 효력이 있는 금지명령을 내린 데 대해, 법원이 해당 소송 원고 외까지 효력을 미치는 명령을 내리는 것은 권한을 초과한다는 판단이다.
배럿 대법관은 “행정부가 법을 따라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사법부도 그 역할을 넘어설 수 없다”며 “법원은 개별 사건과 당사자에 국한해 구제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엘레나 케이건, 케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과 함께 반대의견을 내고 “대다수는 행정명령의 위헌성 여부를 외면하고, 단지 법원의 권한만 문제 삼았다”며 “행정명령이 명백히 위법한 만큼 이를 전국적으로 차단하는 명령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인 지난 1월 20일, 부모 중 한 명이라도 미국 시민권자 또는 영주권자가 아닌 경우 미국에서 태어난 자녀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소속 주지사들이 이끄는 22개 주의 법무장관들과 워싱턴DC, 이민자 권리단체, 임신 중인 이민자들이 위헌 소송을 제기했고, 일부 하급심은 행정명령 효력을 중단하라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현재 출생시민권 금지 조치의 효력이 중단된 22개 주는 워싱턴, 애리조나, 일리노이, 오리건, 뉴저지, 매사추세츠, 캘리포니아, 뉴욕, 코네티컷, 로드아일랜드, 미시간, 콜로라도, 델라웨어, 네바다, 하와이, 메릴랜드, 메인, 미네소타, 뉴멕시코, 버몬트, 위스콘신, 노스캐롤라이나 등이다.
이들은 해당 정책이 수정헌법 제14조에 명시된 ‘미국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은 시민이다’는 조항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 조항은 1868년 남북전쟁 이후 도입된 것으로, 노예 해방 후 태어난 이들의 시민권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됐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성명을 통해 “해당 행정명령은 명백히 불법이고 잔혹하다”며 “그 누구에게도 적용되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판결 이후 “영향을 받을 부모들은 신속히 집단소송을 제기하고 임시 금지명령을 요청해야 한다”고 권고했고, 메릴랜드 사건의 원고 측은 판결 2시간 뒤 관련 집단소송 허가를 법원에 신청했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와 로이터가 이달 11~12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출생시 시민권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전체의 24%에 불과했으며, 반대는 52%에 달했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84%가 반대했고, 공화당 지지층에서는 43%가 찬성, 24%가 반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판결 직후 SNS에 “거대한 승리”라고 자평했다.
김상윤 (yoo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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