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사상 초유의 실험이 벌어지는 경주 고분이 있습니다.
5세기 신라 공주 무덤으로 추정되는 쪽샘 44호분인데요.
10년간 발굴을 마치고 무덤 축조 비밀을 밝히기 위해 다시 쌓고 있는데, 현장이 공개됐습니다.
박철희 기자입니다.
[기자]
무너지는 고분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전면 발굴에 나선 게 2014년,
대릉원 바로 옆 경주 쪽샘 44호분은 그야말로 보물창고였습니다
10년간의 조사에서 비단벌레 날개 4백 장으로 장식한 말다래를 비롯해 행렬도가 그려진 토기, 삼색 실로 짠 비단과 고대 바둑돌 같은 5세기 후반 신라의 최고급 생활 유물과 사람 머리카락까지 나왔습니다.
유물로 추정한 무덤 주인은 10살 안팎의 신라 공주,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는 이 무덤을 신라의 방식으로 다시 쌓는 실험을 지난해말 시작했습니다.
나무곽에 시신과 부장품을 넣고 그 위에 돌과 흙을 쌓아 봉분을 덮는 돌무지덧널무덤,
나무가 썩으면 돌이 무너져내려 도굴이 불가능한,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형태입니다.
[정인태 /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학예연구사 ”이 무덤의 특징은 많은 돌과 나무 구조물이 쓰였다는 점이거든요. 그래서 이번 실험의 목적도 과연 이 구조, 이 시설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무덤 내에서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밝혀내는 겁니다.)“]
타원형 봉분 아래 켜켜이 쌓인 흙과 돌무지 사이로 목조 구조물 흔적을 일일이 분석했습니다.
무덤 주인과 순장자 시신이 있던 목곽 구덩이 주변으로 지름 20센티미터 나무 기둥 108개가 동심원 형태 넉 줄로 서 있었고 거대한 버팀목 31개가 기둥을 받쳤던 게 드러났습니다.
기둥 높이 최고 3.2미터, 버팀목은 6.6미터로 추정됐습니다.
이같은 목조 구조물이 확인된 고분은 이곳과 황남대총 남분.북분, 금관총, 서봉총까지 신라 돌무지덧널무덤 5기뿐입니다.
연구소 측은 실험을 위해 수령 73년에서 57년 사이 국내산 육송으로 기둥과 버팀목을 만들고 있는데 이들을 안정적으로 세우는 게 당면 과제입니다.
목조 구조물 제작이 끝나면 강돌 16만 개, 5톤 트럭 2백 대 분량을 다시 쌓을 예정인데 발굴 때 나온 돌을 재활용하고 큰 돌 일부는 경주 북천에서 가져올 방침입니다.
실험은 내년 4월쯤 마무리될 예정인데 신라인들이 무덤 속에 목조 구조물을 설치한 목적과 엄청난 양의 돌을 쌓은 배경, 그리고 무덤 중심부를 제외한 돌무지 대부분이 1천5백 년 넘게 제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비결을 밝혀내는 게 핵심 과제입니다.
[임종덕 / 국립문화유산연구원장 ”고구려나 백제 시대와도 비교할 수 있는 자료가 될 것 같고요. 신라인만의 무덤 축조 방식을 규명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의미가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사후 세계가 현실의 연장이라 여겼던 5세기 신라인들에게 무덤은 집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당대 최고의 토목과 건축기술이 결합된 신라 고분의 비밀이 이번 실험을 통해 어느 정도 드러날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TBC 박철희입니다. (영상취재 이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