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카라쿠배’에 모두 노조
국내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쿠팡’에서 본사와 모든 계열사 직원을 아우르는 통합 노동조합 ‘쿠니언’이 지난 17일 출범했다. 민주노총 산하 물류·배송 자회사 노조가 있었지만, 본사와 계열사 사무직 등 일반 직원까지 포함하는 노조는 처음이다. 쿠팡 통합 노조가 설립되면서 국내 대표 IT 기업 집단을 일컫는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에 모두 노조가 생겼다. 앞서 지난해에는 국내 1위 음식 배달 앱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과 국내 대표 여행 플랫폼 기업 ‘야놀자’에 노조가 출범하는 등 국내 IT 업계에 노조 설립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존재감 커진 판교 IT 노조
코로나 팬데믹 초기만 해도 IT 기업들의 노조 결성은 드물었다. 높은 처우와 사내 복지 제도, 잦은 이직 등으로 노조가 활성화되기 어려운 여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본격화된 인공지능(AI) 기반 자동화 코딩 기술 보급과 해외 개발자 원격 채용으로 급여 등이 낮아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여기에 더해 투자 혹한기로 IT 스타트업 시장이 얼어붙으며 이직 시장이 위축되자, 노조 활동으로 처우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한 것이다.
그래픽=김성규
네이버와 카카오 직원들의 노조 가입률은 지난해 모두 50%를 넘어섰다. 판교 IT 기업에서 일하는 한 개발자는 “이직할 때마다 웃돈을 얹어주던 시대는 이미 2~3년 전 끝났다”며 “요즘은 이직하면 오히려 연봉을 낮춰 들어가는 실정이라, 노조에 가입해 처우 개선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설립된 IT 노조의 활동도 그 어느 때보다 강화됐다. 카카오 통합 노조인 ‘크루유니언’은 지난 11일 첫 파업을 했다. 주요 계열사인 카카오모빌리티의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협상이 최종 결렬되자, 통합 노조가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한글과컴퓨터’ 노조도 이달 들어 임단협 결렬을 이유로 창사 이래 첫 파업을 예고했고, 게임 기업 ‘넥슨’의 핵심 자회사인 네오플 노조도 “영업이익의 4%를 성과급으로 지급해야 한다”며 지난 10일부터 야근 거부와 반대 집회 투쟁에 들어갔다.
◇경쟁 회사 간 노조 연대 잇따라
전자상거래 분야에서 네이버는 쿠팡과 치열하게 경쟁 중이지만, 네이버 노조는 쿠팡 통합 노조가 생기자 “쿠팡그룹의 노조 설립 소식은 무척 반갑다”며 “서로의 울타리가 되자”는 성명을 냈다. 카카오 노조는 지난 11일 네이버 노조 집회에 참여해 경쟁사 노조에 힘을 실었다.
판교 IT 기업 노조는 앞으로도 확대될 전망이다. 불황 여파로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줄여 이직이 더욱 어려워진 직원들이 노조를 처우 개선 수단으로 주목하기 때문이다. 채용 플랫폼 ‘사람인’에 따르면 올 1분기 IT 업계 채용 공고는 전년 대비 13.4% 감소했다. 특히 신입 개발자 채용은 전년 대비 18.9% 줄었다.
또 개발자를 대체하는 AI 기술 보급과 외국인 원격 채용이 고용 불안의 배경으로 작용하면서 “이제 기댈 곳은 노조밖에 없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원격 채용 서비스 기업 ‘리모트’에 따르면, 작년 국내 기업들의 해외 채용 증가율은 전년 대비 125%로, 싱가포르(103%)·호주(93%)·영국(67%)·미국(49%)·독일(39%)보다 높았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노조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했던 IT 기업 직원들이 이제는 최소 구성 요건만 되어도 노조를 설립하려고 한다”며 “업계 상황이 바뀌자 이들이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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