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6월 18일) 김건희 씨의 새로운 육성 녹음을 검찰이 확보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JTBC와 SBS가 ‘단독’이라며 같은 내용의 소식을 한 시간 간격으로 보도했고 이후 다른 언론들도 어젯밤부터 오늘 오전까지 속속 대동소이한 뉴스를 내놨습니다. 특정 언론이 한 발 앞서 검찰로부터 취재한 뉴스를 터뜨리고 다른 언론들이 뒤늦게 검찰 확인 과정을 거쳐 따라가는 전형적인 ‘검찰발 뉴스’의 확산 과정입니다.
‘스모킹건’ 새로 확보했다는 검찰발 뉴스
언론들이 앞다퉈 보도한 뉴스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을 재수사하고 있는 서울고검이 최근 미래에셋을 압수수색했는데, 거기에서 김건희 씨와 증권사 직원 간의 대화 녹음 파일 수백 개가 새로 나왔다. 그 중에는 ‘블랙펄인베스트 측에 수익의 40%를 주기로 했다’는 취지의 김건희 육성과 블랙펄인베스트에서 나온 이른바 김건희 엑셀파일의 내용에 대해 김건희와 증권사 직원이 상의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김건희 씨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으로 큰 수익을 본 사실, 그리고 주가조작을 위한 통정매매 등에 김건희 계좌가 사용된 사실은 이미 수사와 재판을 통해 확정됐습니다. 김건희를 기소하기 위한 마지막 퍼즐은 김건희가 주가조작을 미리 알았는지, 즉 ‘사전 인지’ 여부였습니다. 물론 윤석열 정부의 검찰은 ‘사전 인지’의 증거가 없다며 김건희에게 불기소 처분을 내리며 면죄부를 줬죠.
그런데 이번에 검찰이 확보했다는 녹취 파일은 김건희의 ‘사전 인지’를 매우 강하게 입증할 수 있는 증거입니다. 주가 조작 작전을 몰랐다면 단순한 일임매매의 대가로 수익의 40%나 넘겨줄 리가 없기 때문이죠. 뉴스타파가 최초 보도한 ‘김건희 엑셀 파일’과 관련한 내용도 주가조작세력과 수시로 소통을 했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이것으로 김건희 기소를 위한 9부 능선을 넘었다고 평가해도 될 정도입니다. 서울고검이 재기수사를 결정한 게 지난 4월 25일이니까 불과 한 달 반만에 지난 4년을 뛰어넘는 성과를 올린 것입니다. 놀랍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합니다. 4년 동안 이 사건을 수사해 온 검찰은 왜 이 결정적인 스모킹건을 확보하지 못했을까요? 김건희의 ‘사전 인지’ 여부가 수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건인 상황에서도 검찰은 증권사 직원과 김건희 씨 사이의 매매 녹취를 확보할 생각조차 안 한 걸까요?
검찰은 정말 몰랐나
이번에 서울고검이 확보했다는 녹음 파일은, 증권사 직원과 고객의 전화 통화를 증권사가 자동으로 녹음해 보관하고 있던 것입니다. 검찰은 이걸 ‘매매보조자료 녹음파일’이라고 부릅니다. 증권사 서버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비교적 손쉽게 확보할 수 있는 자료입니다. 그렇다면 도이치모터스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은 지난 4년 동안 이 ‘매매보조자료 녹음파일’을 확보한 적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뉴스타파는 지난 4년 동안 검찰이 확보한 김건희와 증권사 직원 사이의 녹취를 수차례 보도해 왔습니다.
김건희 도이치모터스 녹취록 공개…대통령 거짓말 드러났다 (2022.9.2)
김건희 모녀, 권오수한테 직접 도이치 내부 정보 받았다 (2022.12.22)
김건희 새 녹취록 공개… 도이치 통정매매 직접 했다 (2023.12.14)
김건희 녹취록 추가 공개….’선수’와 직접 소통, 시세 조종 알았다 (2023.12.21)
지금까지 뉴스타파가 보도해 온 김건희 씨와 증권사 직원 사이의 녹취록 역시, 김건희 씨의 ‘사전인지’를 강하게 시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김건희 씨가 통정매매 주문을 직접 냈다든가, 주가조작 ‘선수’가 주식을 팔아주기로 했다고 언급한다든가, 증권사 직원으로부터 ‘시세를 올리기 위해 사야한다’는 보고를 받는 내용이었습니다.
김건희 씨가 도이치모터스 주식 거래에 사용한 계좌는 ①신한투자증권 ②DB증권 ③대신증권 ④미래에셋증권 ⑤DS증권계좌였습니다. (한화증권 계좌도 있지만 문제 거래가 단 1건 뿐이니 일단 제쳐두죠) 뉴스타파가 보도한 김건희 씨와 증권사 직원의 녹취는 각각 ①에서 ③까지, 즉 신한투자증권과 DB증권, 대신증권 직원과의 녹취였습니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죠, 김건희 씨가 이용한 5개의 증권사 중에서 검찰이 3곳만 녹취 자료를 확보하고 나머지 2곳은 내버려 둘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까요?
검찰, 미래에셋 증권사 녹취 2021년에 이미 확보했다
지난 2023년 9월 뉴스타파는 그 시점까지 2심 법원에 제출된 도이치모터스 기록 전체를 입수했습니다. 여기에는 검찰의 수사기록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변호인들의 요구에 의해 검찰이 제출한 ‘기록 목록’인데요, 이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만든 모든 기록을 목록화한 것입니다. ‘목록’만 157쪽이니까 검찰 기록이 얼마나 방대한지 짐작할 수 있겠죠. 기록 목록에 따르면 이 사건 검찰 수사 기록은 본권만 46권, 별권은 27권입니다. 아래 사진이 바로 이 기록 목록의 첫 장입니다.
뉴스타파가 확보한 도이치모터스 사건 검찰 수사기록 목록의 첫 장. '목록'만 157쪽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다.
이 기록 목록 156쪽에는 김건희가 거래한 5개 증권사의 ‘매매보조자료 녹음파일’ 즉 증권사 직원과 고객의 통화 녹음 파일이 나와 있습니다. 별권 20-①은 ‘매매보조자료 녹음파일 녹취서- 디에스 증권 I’이고 별권 20-②는 ‘매매보조자료 녹음파일 녹취서- 디에스 증권 II입니다. 그리고 별권 20-③은 ‘매매보조자료 녹음파일 녹취서 - 신한금융투자, 대신증권, DB투자증권, 미래에셋대우’라고 되어 있습니다.
검찰수사기록 목록 156쪽, 우측 하단에 대우증권의 매매보조자료 녹음파일을 확보한 사실이 적혀있다.
따라서 김건희가 거래한 5개 증권사 모두, 검찰은 ‘매매보조자료 녹음파일’ 즉 고객과 직원 사이의 통화 녹음 파일을 확보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검찰이 9개 증권사를 압수수색한 것은 2021년 9월 6일입니다. 이 사실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에서 검찰 스스로가 국회에 제출한 압수영장 목록에 나와있습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검찰이 국회에 제출한 도이치모터스 사건 압수영장 내역.
두 가지 경우의 수
더욱 이상합니다. 검찰발 기사들에 따르면 검찰은 ‘최근’에 미래에셋 증권을 압수수색해 해당 녹음파일을 확보했다고 되어 있거든요. 그렇다면 이번에 새로 확보한 것은 2021년에는 확보하지 못한 자료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때는 확보를 못했고 이번에는 확보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혹시 당시에는 수사의 초점이 김건희가 아니어서 김건희 말고 다른 고객들과 증권사 직원의 통화 녹취만 확보했고 이번에 김건희 것을 새로 확보한 것일까요? 그렇다면 뉴스타파가 이미 보도한 신한금융투자와 동부증권, 대신증권의 경우에는 김건희 녹음 파일을 어떻게 확보했을까요? 일부는 확보하고 일부는 확보하지 못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요?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입니다.
다시 지금의 상황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할 때 경우의 수는 다음 2가지로 압축되는 것 같습니다.
1. 검찰이 2021년 9월 6일 미래에셋을 압수해 ‘매매보조자료 녹음파일’을 확보했지만, 유독 김건희 녹음 파일만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 새롭게 압수수색을 해서 찾아냈다.
2. 검찰은 2021년 9월 6일 미래에셋 압수 수색에서 김건희 녹음 파일도 확보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걸 수사에 활용하지도 재판에서 공개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특검이 출범하자 마치 새로 발견한 증거인 것처럼 서둘러 언론에 알렸다.
두 경우의 수 중 어느 쪽이 더 가능성이 높은지는 독자 여러분께서 충분히 판단하실 수 있을 겁니다.
2021년에 ‘스모킹건’이 공개됐다면…
이제 2021년 상황으로 돌아가보죠. 윤석열 씨는 그해 3월 검찰총장직에서 사퇴했고 6월 대선 출마를 선언합니다. 그리고 경선을 거쳐 11월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됩니다.
검찰이 이번에 확보했다고 주장하는 스모킹건이 2021년 9월 6일 미래에셋 증권사의 압수수색에서 확보됐다면, 그리고 그 확보된 증거에 따라 검찰이 지체없이 김건희 씨를 수사했다면 윤석열 씨는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될 수 있었을까요? 혹은 이듬해 3월 치뤄진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만약 이 의심이 사실이라면 검찰은 뉴스타파에게 씌웠던 혐의, 즉 ‘악의적 대선 개입의 혐의’를 스스로 뒤집어 쓰게 됩니다. 새로 출범할 특검이 도이치모터스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의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를 반드시 수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뉴스타파 심인보 inbo@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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