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블랙홀이 스쳐 지나갈 때 방출되는 중력파의 에너지를 시뮬레이션한 그림. 두 블랙홀은 중력 때문에 궤적이 휘어진다. 그림에서 어두울수록 에너지가 높다. 중력파를 정밀하게 모형화하면 블랙홀의 충돌 등 복잡한 우주 현상에 대한 이해를 심화할 수 있다. 마티아스 드리세/독일 훔볼트대 제공
독일 연구팀이 가까이 스쳐가는 두 블랙홀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역대 가장 높은 정밀도로 시뮬레이션하는 데 성공했다. 컴퓨터 정보처리 단위인 코어의 연산 시간을 모두 합치면 30만 시간이 넘는다. 이번 연구에는 우주의 기본 입자 간 상호작용을 나타내는 수학적 개념이 활용돼 과학계를 놀라게 했다. 거대 천체인 블랙홀과 매우 작은 규모의 미시세계에서 움직이는 입자에서 유사성이 발견된 것이다.
얀 플레프카 독일 훔볼트대 물리학연구소 교수팀은 두 블랙홀이 서로 근접해 지나갈 때 방출되는 중력파를 입자물리학 개념을 도입해서 정밀하게 묘사하는 데 성공하고 연구결과를 14일(현지 시간)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공개했다.
중력파는 블랙홀이나 중성자별처럼 질량이 매우 큰 물체의 속도가 변하거나 서로 병합, 충돌할 때 우주에 퍼지는 시공간의 파동을 말한다. 약 100년 전 아인슈타인이 예측한 중력파의 존재를 실제 관측으로 확인한 과학자들이 2017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기도 했다. 중력파를 정밀하게 모형화하면 블랙홀의 충돌 등 우주 현상에 대한 이해를 심화할 수 있다.
과거 뉴턴이 정립한 고전 역학에서는 물체의 에너지와 각운동량 등 물리량이 보존되기 때문에 두 물체의 운동과 상호작용을 나타내는 '2체 문제'를 정확히 풀어낼 수 있다. 이와 달리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설명되는 천체인 블랙홀 2개의 충돌 과정은 고전 역학에서처럼 물리량이 보존되지 않아 기존 2체 문제 해법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두 블랙홀의 상호작용은 개념적으로 단순하지만 수학적으로 표현하기 까다롭다. 과학자들은 보통 블랙홀에서 관측된 중력파 데이터를 활용해 근사치를 구하는 방식으로 블랙홀의 움직임을 설명한다.
연구팀은 매우 작은 규모에서 우주의 기본 입자 사이의 상호작용과 특성을 표현하는 수학적 개념인 '칼라비-야우 다양체(Calabi–Yau manifold)'를 도입해 두 블랙홀이 가까워질 때 방출되는 중력파를 정밀하게 계산하는 데 성공했다.
칼라비-야우 다양체는 우주의 모든 물질이 1차원의 끈으로 이뤄졌다는 '초끈 이론'에서 등장하는 6차원 공간을 말한다. 그동안 순수한 수학적 개념으로 여겨졌던 칼라비-야우 다양체가 실제 천체물리 현상을 설명하는 데 적용됐다는 점이 특징이다.
국내 중력파 연구자인 이형목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블랙홀 문제와 입자물리학 문제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는 말은 예전부터 있었다"며 "칼라비-야우 다양체는 입자들 사이의 상호작용 계산에서 사용되는 개념인데 이를 블랙홀 문제에 응용해 아주 정밀한 근삿값을 구하는 방법론을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중력파 관측 데이터를 해석하는 데 사용하는 모델을 개선해 중력파를 활용한 천문학 연구와 발견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교수는 "중력파를 분석하려면 먼저 중력파형을 계산해야 하는데 이때 막대한 연산이 필요하다"며 "중력파형을 빨리, 정밀하게 계산하는 방법을 개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신 컴퓨팅 기술을 기반으로 한 계산물리학이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이번 연구에는 독일 베를린 추제연구소의 고성능 컴퓨팅 자원이 활용됐다. 논문 제1저자인 마티아스 드리세 훔볼트대 물리학연구소 박사과정생은 "컴퓨팅 자원 접근 가능성이 프로젝트 성공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참고 자료>
- doi.org/10.1038/s41586-025-08984-2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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