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파력 입증한 특검에 궁지 몰린 尹·김건희…“김 여사 소환 의식한 수싸움” 해석도
‘좌천’ 시련 겪은 특수통 강골들, 12·3 비상계엄 사태로 ‘특검’과 ‘피의자’로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이 7월5일 내란 특별검사(특검)팀에 출석해 두 번째 대면조사를 받는다. 특검팀의 최후통첩에 '소환 불응 카드'는 접었지만 이번엔 '10~20분 지연' 가능성을 통보하며 '정시 출석'만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체포영장 재청구 압박에 기싸움 주도권은 특검으로 넘어갔지만, 강제수사에 착수한 민중기 특검팀의 김건희 여사에 대한 소환도 가시화되면서 윤 전 대통령 측의 반격 수위는 다시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3대 특검'은 나란히 핵심 피의자, 참고인에 대한 줄소환 및 대대적 압수수색을 전개하며 윤 전 대통령 부부를 겨냥한 포위망을 좁히고 있다.
(위 사진)조은석 내란 특검, (아래 사진)6월29일 피의자 신분으로 내란 특검 조사를 받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서초구 서울고검 청사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연합뉴스
"尹이 가장 피해야 할 인물이 특검으로"
"비상계엄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2010년 11월5일, 대정부 질문이 진행되고 있던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이 발칵 뒤집혔다. 여야 의원들은 일제히 이귀남 당시 법무부 장관을 거세게 몰아붙이며 '망나니 칼춤 추는 검찰의 정치탄압'이라는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서울북부지검이 여야 국회의원 11명의 의원실을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한 데 대한 격앙된 반응이었다.
중심에는 조은석 내란 특검(60·사법연수원 19기)이 있었다. 조 특검은 대검찰청 대변인에서 일선으로 이동,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로 수사 지휘봉을 잡은 지 3개월 만에 예열 없이 입법부를 패닉에 빠트렸다. 이명박 정부에서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 입법 로비 사건을 파헤쳐 '여의도 저승사자'가 된 조 특검의 일격은 특수통 특유의 강골 기질과 핵심·정점부터 치고 나가는 전개 방식이 응축된 수사였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논평을 통해 "조은석 검사의 이후 행보를 지켜보겠다"는 의미심장한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비상계엄을 떠올리게 한, 그야말로 전격적인 수사를 전개했던 이 특수통 검사는 15년이 지난 2025년 7월 현재 12·3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내란·외환 혐의를 겨누고 있다. 수사의 정점은 조 특검과 함께 특수통 검사의 상징을 나눠가진 윤 전 대통령이다.
'인연'과 '악연'이 반복된 윤 전 대통령과 조 특검은 예상대로 치열한 기세 싸움을 펼치는 중이다. 검찰 재직 당시 조 특검이 정교한 법리와 논리로 혐의를 입증하고 피의자를 옭아매는 스타일이라면, 윤 전 대통령은 압박과 강공 모드로 거칠게 돌파해 가는 유형이었다고 한다. 검사 출신의 한 법조계 인사는 "윤 전 대통령 입장에선 가장 까다로운, 피해야 할 인물이 특검으로 온 것"이라며 "조 특검의 스타일을 잘 파악하고 있는 윤 전 대통령이 출석 시간이라도 늦추겠다'고 하는 것은 향후 진행될 김건희 여사에 대한 다른 특검의 소환조사까지 의식해 기싸움을 벌이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은 1965년생인 조 특검보다 다섯 살 많지만, 사법연수원은 4기수 아래인 23기다. 윤 전 대통령이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후 사법시험에 거듭 낙방하며 9수를 한 것과 달리 조 특검은 고려대 법대 4학년이던 1987년 '소년급제'했다. 윤 전 대통령의 법률대리인인 윤갑근 변호사와 이재명 정부 초대 민정수석으로 낙점된 봉욱 수석이 조 특검과 연수원 동기다.
조 특검은 대형 수사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정국을 뒤흔들었던 진형구 전 대검 공안부장의 조폐공사 노조파업 유도 사건 수사의 결정적 물꼬를 튼 것도 조 특검이었다. 진 전 검사장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장인이다. 1999년 6월 진 전 검사장의 노조파업 유도 발언이 일파만파 번지면서 검찰은 특별수사본부를 꾸렸다. 특수본에서 대검 공안부를 압수수색하며 '소검이 대검을 치는' 초유의 수사가 진행됐다. 그러나 '키맨'이었던 강희복 조폐공사 사장이 입을 닫으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이때 조 특검이 투입돼 밤샘조사를 벌인 끝에 "진형구가 지시했다"는 강 사장의 자백을 이끌어냈다. 진 전 검사장은 구속기소됐고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조 특검을 거쳐간 굵직한 사건은 이뿐만이 아니다. 신동아그룹의 몰락을 불러온 최순영 회장 비리 사건과 나라종금 퇴출 저지 로비 의혹, 경성 비리, 썬앤문 사건 등을 수사했고 대통령 가족과 최측근, 거물 정치인을 줄줄이 수사·구속해 재판에 넘기며 '끝장 수사'를 진두지휘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아들 김홍일 전 의원과 한광옥 전 대통령비서실장,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이광재 전 강원지사 등도 조 특검의 수사망을 피하지 못했다. 1차 수사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의혹을 재수사하며 혐의를 밝혀낸 사건이 많아 '재수사 전문가'로도 불린다.
조 특검과 근무연이 있는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수사 역량 면에서 조 특검은 발군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정권을 가리지 않는, 때로는 수뇌부와 충돌도 마다하지 않고 주목받는 대형 수사를 끌고 나간 이력이 (검찰총장 등) 하마평에만 오르다 결국엔 물을 먹게 된 부메랑이 된 것 같다"며 "조 특검이 이번 수사에서 와신상담의 결실을 이뤄내기 위해 총력전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8월1일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은석 당시 서울고검장(오른쪽)과 윤석열 중앙지검장이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좌천' 시련 특수통 강골들…특검과 피의자로
특수수사에서 자타 공인 역량을 검증받은 조 특검이었지만 '좌천'을 피하지 못했다. 조 특검은 대검 형사부장으로 있던 2014년 박근혜 정부에서 발생한 세월호 참사 수사를 이끌었다. 그는 당시 해경 정장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상죄 적용을 강력 주장했다. 참사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던 청와대는 조 특검과 연수원 동기인 우병우 민정수석을 거쳐 황교안 법무부 장관, 김주현 법무부 검찰국장을 통해 재검토를 압박했다. 그러나 조 특검은 해경 정장에 해당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기소했고 이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조 특검의 결정은 좌천성 인사로 돌아왔고 2017년까지 그는 비수사 한직 부서를 돌아야 했다.
조 특검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검찰 개혁이 화두로 떠올랐던 2017년 7월 검찰총장 후보군으로도 거론되다가 서울고검장에 임명됐다. 국정원 댓글공작 수사 외압 의혹을 폭로하며 조 특검과 마찬가지로 좌천을 거듭하던 윤 전 대통령이 한 달 후인 8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영전하며 두 사람은 극적으로 조우했다. 윤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에 합류하며 좌천의 고리를 끊고 '빛'을 보기 시작했는데,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윤 전 대통령의 기사회생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조 특검이었다.
'좌천 검사'로 쓴맛을 봤던 두 사람의 운명은 2019년 7월 윤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에 지명되면서 완전히 엇갈린다. 조 특검도 당시 유력한 검찰총장 후보군으로 올랐지만 검찰 개혁에 가장 적극적인 입장을 피력한 윤 전 대통령이 파격 발탁됐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조 특검의 사퇴를 만류하기 위해 직접 설득에 나섰지만, 조 특검은 '연수원 후배' 윤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에 취임하자 사의를 표명하고 검찰을 떠났다.
조 특검은 2021년 1월 감사원 감사위원으로 발탁돼 다시 공직으로 돌아왔다. 조 특검의 공직 복귀와 윤 전 대통령의 제20대 대통령선거 승리는 4년 후 강골 특수통 검찰 출신의 정면충돌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조 특검은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에 대한 표적 감사 등 문재인 정부 관련 감사를 놓고 감사원 수뇌부와 부딪치며 '나홀로 전투'를 벌였다. 감사원장 대행을 맡아 대통령 한남동 관저 비리 의혹 감사에 대한 재심의를 요구하면서 윤석열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에 대한 각종 의혹이 증폭되던 때 비상계엄이 선포됐고, 결국 특수통의 상징이던 두 사람은 특검과 피의자로 맞서게 됐다. 윤 전 대통령은 7월5일 서울고검의 내란 특검 조사실에서 두 번째 대면조사를 받는다. '불응 시 체포영장 재청구'를 천명한 내란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을 상대로 고강도 조사를 벌인 뒤 구속영장 청구 시점을 결정할 방침이다.
김주현 전 민정수석, 심우정 전 검찰총장 ⓒ뉴시스·연합뉴스
■결정적 국면마다 등장한 김주현-심우정 그리고 한덕수
조은석 특검이 이끄는 내란 특검팀은 '계엄의 밤'을 규명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을 포함한 핵심 인물들의 혐의 다지기를 위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김건희 여사의 16개 의혹을 다루는 김건희 특검팀도 정식 수사 착수 이틀째인 7월3일 삼부토건과 피의자 주거지 등 13곳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하며 강제수사 신호탄을 쐈다.
12·3 비상계엄과 김 여사 관련 의혹의 결정적 국면마다 등장하는 인물은 김주현 전 대통령실 민정수석과 심우정 전 검찰총장이다. 검찰 재직 당시 대표적인 '기획통'으로 불렸던 김 전 수석은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가 민정수석직을 부활하면서 대통령실에 입성했다. 심 전 총장은 김 전 수석이 임명된 직후 이뤄진 인사에서 검찰총장에 올랐다.
김 전 수석은 임명 두 달 만인 지난해 7월 정부 내 아무런 공식 직책이 없는 김 여사와 비화폰으로 여러 차례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는데, 해당 시기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으로 김 여사에 대한 출장조사와 주가조작 공범들의 항소심 결심공판이 진행되던 때였다. 김 전 수석은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김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을 불기소 처분한 10월엔 심 전 총장과도 비화폰으로 연락했다. 당시는 명태균씨의 공천 개입 의혹이 불거진 시기이기도 하다. 대통령 부인과 검찰총장에게 비화폰이 지급된 전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용산과 검찰이 김 여사 조사 방식과 무혐의를 두고 '직거래'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상태다. 현직 검찰총장 신분으로 특검의 수사를 받게 될 처지에 놓인 심 전 총장은 검찰 개혁에 대해 뒤늦은 우려를 표명하며 7월2일 불명예 퇴진했다.
김 전 수석은 논란의 '삼청동 안가 회동'에도 참석했다. 비상계엄 선포 이튿날이자 해제 당일인 지난해 12월4일 김 전 수석은 안가에서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이완규 법제처장과 회동했다. 모두 검사 또는 판사 출신의 법조인인 이들은 계엄과 무관한 '연말 모임'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이들이 이후 휴대전화를 폐기했고, 해당 모임에 한정화 당시 대통령실 법률비서관이 배석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회동' 성격을 규명하기 위한 특검 수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강의구 전 부속실장은 조사에서 안가 회동 다음 날인 12월5일 김 전 수석으로부터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 해야 하는데 비상계엄 관련 문서가 있느냐'는 취지의 질문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절차적 하자'가 있음을 인지한 강 전 실장은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사후에 서명을 받아 비상계엄 문건을 작성했지만, 한 전 총리가 향후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시하자 결국 폐기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 전 총리가 폐기를 지시한 시점은 김 전 장관이 검찰에 출석해 긴급체포 된 이후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특검은 계엄을 반대했다던 한 전 총리의 기존 진술과 대통령실 폐쇄회로(CC)TV에 기록된 영상이 배치되는 점을 확인하고 7월2일 그를 소환해 장시간 조사를 벌였다. CCTV에는 한 전 총리가 계엄 문건을 살펴보는 장면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7월3일 김 전 수석도 소환해 12시간가량 조사하는 등 국무위원들에 대한 전방위 수사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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