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필의 미래창
영국 과학자들, 10년내 전체 2% 완성 목표
맞춤형 아기 등 생명 윤리 논란 불거질 듯
영국 과학자들이 세계 처음으로 인간 게놈 합성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웰컴트러스트 제공
과학자들이 인간 게놈 해독에 이어 인간 게놈 합성이라는 장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00년 인간 게놈 해독 초안이 나온 지 25년만이다.
인간 게놈 합성 기술은 그동안 원하는 유전자를 가진 맞춤형 아기를 만들어내는 등 생명윤리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 금기시돼 왔던 것이어서 이를 둘러싼 논란도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의료 연구 지원재단 웰컴트러스트(Wellcome Trust)는 영국 과학자들로 구성된 연구진이 세계 처음으로 인간 게놈 합성 프로젝트(SynHG)를 하고 있다고 최근 밝혔다. 재단은 인공 염색체를 만드는 이 연구에 1천만파운드(약 190억원)을 지원한다.
30억쌍의 DNA 염기서열 중 극히 일부에 손을 대는 유전자 편집과 달리, 이번 연구는 인간 염색체 전체를 합성하는 것이 목표다. 목표 달성까지 수십년이 걸릴 것을 본다.
연구진은 대규모 유전체를 직접 만들어보면 표적 세포에 기반한 치료법을 포함해 인간 건강 연구에서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또 혹독한 기후에도 견딜 수 있는 능력 등 새로운 특성을 가진 식물을 개발하는 데도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재단이 운영하는 웰컴생어연구소의 매튜 헐스 교수는 비비시에 “맨땅에서부터 DNA를 구축하다 보면 DNA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시험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웰컴생어연구소는 2003년 해독 작업이 완성된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서 전체 인간 게놈의 약 3분의 1을 해독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단일 기관으로는 가장 큰 비중이다.
재단은 처음 5년 동안은 본격적인 게놈 합성 작업을 위한 도구와 기술을 개발하고, 이후 5~10년 내에 전체 DNA의 2%에 해당하는 염색체를 합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연구진은 옥스퍼드대를 중심으로 케임브리지대, 켄트대, 맨체스터대, 임페리얼칼리지런던 과학자들로 구성됐다. 연구를 이끄는 제이슨 친 옥스퍼드대 교수는 "인간 게놈을 포함한 거대 게놈을 합성하는 능력은 생명공학과 의학 지평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2023년 합성효모게놈(Sc2.0) 프로젝트 국제연구 컨소시엄은 1200만 염기쌍으로 이뤄진 효모 염색체 16개 전체를 합성하고 합성 DNA를 절반 이상 포함한 인공 효모 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한 바 있다. 또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과학자들은 2019년 대장균의 450만 염기쌍 전체를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이보다 수백배 많은 규모의 DNA를 합성하는 도전적 과제다.
연구진은 게놈 합성은 시험관과 배양접시 내에서만 이뤄질 것이며, 합성 생명체를 만들려는 시도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 국립보건원 제공
“언젠간 나올 기술…책임감 있게 개발하려는 것”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시험관과 배양접시 내에서만 이뤄질 것이며, 합성 생명체를 만들려는 시도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연구진의 의도와는 달리 임의로 인체 유전자 변형을 시도하거나 인간 DNA를 가진 생명체를 만드는 등 악용 또는 오용될 소지가 있다고 우려한다.
영국에서 유전자 변형 작물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모색하고 있는 비영리기구 비욘드지엠(Beyond GM)의 팻 토마스 박사는 “우리는 모든 과학자가 좋은 일을 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려 하지만, 실제론 해를 끼치거나 전쟁에 사용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웰컴트러스트재단의 톰 콜린스 박사는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에 자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언젠가는 나오게 될 이 기술을 가능한 한 책임감 있는 방식으로 개발하고 윤리적 문제를 가능한 한 직접 해결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를 위해 생명 윤리 등의 문제를 논의할 사회과학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할 예정이다. 이 프로그램을 이끌 켄트대 조이 장 교수(사회학)는 비비시에 “이 기술이 어떻게 유익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질문과 우려를 가지고 있는지 등에 대해 이 분야 전문가와 사회과학자, 일반 대중의 의견을 고루 들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랜시스크릭연구소의 로빈 러벨-배지 교수는 사이언스미디어센터에 보낸 논평에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때는 잠재적 유용성뿐 아니라 안전과 위험에 대한 우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기술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회적 가치까지 이해해야 한다”며 “다양한 대중과 활발한 대화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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