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용 보행 보조 로봇 '밤비니'가 가동하고 있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지난 17일 찾은 김승종 고려대 의공학부 교수 연구실. 착용하기에 불편고 언뜻 봐도 무거워 보이는 보행 보조 로봇 ‘마이오수트(Myosuit)’가 눈에 들어왔다. 하체를 감싸는 벨트를 착용한 뒤 등에 배터리와 구동 모터가 담긴 백팩을 메자 '기계가 무겁진 않을까'라는 걱정은 기우가 됐다. 착용한 지 몇 초도 되지 않아 몸이 한층 가벼워졌다. ‘마이오수트(Myosuit)’의 무게는 약 5kg이다.
첫 발을 내딛자마자 로봇이 사용자의 미세한 근육 움직임을 감지해 즉각 반응했다. 다리를 들어올릴 때마다 허벅지를 부드럽게 밀어주는 힘이 더해졌고 무릎 관절에 실리던 부담은 확연히 줄었다. 힘껏 다리를 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위로 밀려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김승종 교수는 "마이오수트는 다양한 질환으로 하지가 불편한 환자들을 위해 개발된 보행보조 로봇"이라며 "착용 후에도 자연스럽게 걷고 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의 설명이 과장이 아님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 하반신 불편한 환자를 위한 최적의 보조로봇
마이오수트는 근골격계나 신경계 질환으로 보행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설계된 웨어러블 로봇이다. 금속 프레임을 활용해 관절을 고정하는 '하드 엑소 스켈레톤' 방식과 달리 마이오수트는 유연한 섬유 구조의 ‘소프트 프레임’을 적용해 보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구현한다. 엉덩이와 무릎 관절의 움직임을 보조하고 사용자의 근육 수축 타이밍에 맞춰 적절한 힘을 가해 움직음을 보조한다. 보행 시 최대 230뉴턴(N), 앉았다 일어서기 시 최대 400N의 힘이 가해진다.
보행 보조 로봇 '마이오 수트'의 주요 기능을 나타낸 설명서. 김승종 교수 제공
마이오수트는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기반 스타트업 '마이오스위스'가 개발했다. 김승종 교수는 지난해 후속작 개발 공동연구에 착수했다. 이후 마이오스위스가 재정난으로 문을 닫으면서 현재는 국내 로봇기업 티로보틱스와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산업통상자원부 연구개발(R&D)과제로 선정돼 15억원의 지원을 받았다. 내년 말 식품의약품안전처 의료기기 승인이 목표다.
마이오수트는 평지에서 빠른 보행은 물론 가벼운 달리기도 가능했다. 로봇이 관절의 굽힘과 폄을 정확히 따라가기 때문에 착용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무릎 위쪽을 받쳐주는 힘이 무게중심을 안정적으로 잡아주면서 동작이 흔들리지 않았다. 특히 무릎을 완전히 굽혔다 펴야 하는 스쿼트 동작에선 로봇의 보조 효과가 확연했다. 관절에 걸리는 부하가 분산되면서 허벅지 근육의 긴장도 줄었고 무릎이 견뎌야 할 하중도 가벼워졌다.
사용자가 마이오수트를 착용한 채 계단을 오르고 있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배터리를 포함한 무게는 4.6kg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보조 강도를 실시간으로 조절할 수 있으며 센서가 움직임을 분석해 전기 모터가 적절한 시점에 하지를 밀어준다. 병원 재활실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휴대성과 안전성까지 확보했다.
보행 보조 효과는 실제 실험에서도 입증됐다. 2022년 국제학술지 '센서스'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건강한 성인 남성이 마이오수트를 착용하고 평지와 경사로를 걸었을 때 무릎을 펴는 근육의 근전도(EMG) 활동이 최대 40% 감소했다. 근전도는 근육이 수축할 때 발생하는 전기 신호를 측정해 근육 사용량을 정량화하는 데 활용된다. 2023년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발표된 또 다른 연구에서도 계단을 오를 때 엉덩이와 무릎을 펴는 근육의 활동량이 20~46% 줄었으며 보행 패턴은 자연스럽게 유지됐다.
● '눈치 빠른 로봇'을 만들 것
김 교수 연구팀은 미취학 아동을 위한 재활 로봇 '밤비니 키즈'의 개발에도 참여 중이다. 밤비니 키즈는 재활로봇 전문기업 코스모로봇틱스가 주도해 만든 국내 최초의 유아용 지면 보행형 웨어러블 로봇이다. 뇌성마비나 희귀 신경질환 등으로 보행이 어려운 3~6세 아동을 위해 설계됐다. 올해 12월 식품의약품안전처 의료기기 인증을 목표로 규격 시험이 진행 중이다.
체중 30kg 이하의 아동이 착용하는 밤비니 키즈에는 총 8개의 모터가 하지를 따라 배치됐다. 특히 발목 관절에 장착된 모터는 발끝을 들어올리거나 밀어내는 동작을 가능하게 해 뒤꿈치부터 닿는 정상 보행 패턴 훈련을 유도한다. 김 교수는 “제자리 걷기, 옆으로 걷기, 뒤로 걷기 등 다양한 보행 모드를 통해 초기 움직임 학습을 지원할 수 있다”며 “수동형과 능동형 모드를 나눠 중증부터 경증까지 다양한 장애 아동에게 적용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보행 보조 로봇의 미래 경쟁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 교수는 “이제는 ‘눈치 빠른 로봇’이 중요한 시대”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존 로봇은 사용자가 움직인 뒤 반응하는 구조였지만 앞으로는 사용자의 의도를 먼저 읽고 움직이기 직전에 반응하는 로봇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한 선행 반응 알고리즘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로봇은 이제 단순한 기계 장착을 넘어 인간과 공존하는 보조 시스템으로 발전하고 있다”며 “의료용 보행보조 로봇 분야에서 탁월한 기술력을 가진 한국이 사용자의 감각과 의도를 가장 먼저 읽는 로봇의 선두주자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