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의 씨네만세 1079] 제3회 반짝다큐페스티발 그림자>
[김성호 기자]
초등학교 때 가장 친한 친구가 죽었다. 백혈병이라고 했다. 입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찾은 병원에선 빡빡이가 되어서 희- 하고 웃더니 얼마쯤 흘러서는 그냥 죽어버렸다고 했다. 잘 웃던 아이라서 생각하면 웃는 모습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사람은 모두 죽는다 했고 내가 읽는 책도 모두 죽은 이가 쓴 것이어서 나는 죽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겼다. 그냥 죽었구나 하고 말았다.
나는 이따금 그와 내가 시간을 보내던 놀이터에 그와 내가 가지고 놀던 공과 글러브와 방망이를 가져가서는 혼자서 벽에 던지고 치고 받고 다시 치고 던지고 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치고 받고 던지는 것이 모두 그리움이란 걸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공과 방망이와 글러브가 없이도 누구를 그리워할 수 있게 된 건 또 한참이 흘러서였다.
그리워하는 건 거듭 실패하는 일이라 유쾌하지 않았으나 그리워하고 하지 않고를 내가 나서 정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나는 그저 볼 수 없는 걸 보고 싶어 하다가는 볼 수 없단 걸 인정하겠다 거짓말을 해놓고서 다시 때가 되면 또 보고싶어 하길 반복하곤 하였다. 어차피 안 되는 것이니 그만두면 좋았으련만 안 되면 안 될수록 더 그리워하게 되는 것이 이 그리움이란 놈의 생리인 것이다. 매번 실패하고 매번 포기하고 매번 다가서다 매번 괴로워하는 죽을 때나 끝날 것을 어째서 계속 해야만 하는 건지 나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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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자 원형 스틸컷 |
ⓒ 반짝다큐페스티발 |
가까운 이의 죽음이 가져온 상실
비단 나 뿐만은 아닐 테다. 죽음, 상실, 그리움, 괴로움, 무엇을 잃고 난 뒤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겪었고 여전히 겪고 있는 이가 많을 것이다. 죽음이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마련인 것이고, 수많은 인간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삶 가운데는 숱하게 일어나는 일상다반사의 일이다.
그러나 흔하다고 해서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 상실로부터 끝끝내 일어나지 못하게 되는 일도 우리는 흔히 마주한다. 누군가의 죽음은 개별적이고 유일한 고유의 죽음이므로, 때로는 대체할 수 없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유롭게 하늘을 날던 새가 학교 유리창에 부딪혀 추락했다. 그리고 우리는 대화를 시작했다.'
제3회 반짝다큐페스티발에서 소개된 다큐멘터리 <그림자 원형>의 로그라인이다. 한 줄짜리 핵심 줄거리를 뜻하는 로그라인은 통상 영화의 핵심을 꿰뚫어 표현한다. 새가 유리창에 부딪히는 사건과 대화를 시작하는 일, 좀처럼 관련이 없어 봬는 두 개의 이야기가 한 편의 작품 <그림자 원형>을 지탱한다는 뜻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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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자 원형 스틸컷 |
ⓒ 반짝다큐페스티발 |
새의 죽음으로부터 비롯된 대화
두 이야기의 정체는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난다. 영화 속 주인공 격인 인물은 모두 둘, 카메라를 든 감독 주영과 그 제자 준영이다. 주영은 교사이고, 준영은 청각장애를 가진 학생이다. 둘은 함께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한 모양인데, 서로가 서로를, 또 다른 무엇을 찍고 그를 바탕으로 대화를 나눈다. 주영이 준영에게, 준영은 또 주영에게 서로가 찍은 영화에 대해 질문하고 답한다. <그림자 원형>은 이렇게 서로를 오가며 묻고 답한 기록이자 그 대화의 수기이기도 하다.
처음 인상적으로 드러나는 대상은 새다. 창공을 비행하는 새가 아닌, 죽어 바닥에 떨어진 새다. 학교 유리창에 부닥쳐 죽은 새를 교사 주영이 옮겨다 땅에 묻는다. 그저 묻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장면을 찍어서 영상으로 기록한다. 학생 준영이 그에 대해 질문한다.
"죽은 신체는 왜 넣었나요?"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준영의 차례다. 그 또한 떨어진 새를 만난다. 선생님 주영이 그러했듯 준영 또한 새를 집어 땅을 파고 묻는다. 주영이 한 행위가 모방되고 반복된다. 죽은 신체, 그러니까 어떠한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 사물이던 것이 특별한 의미를 지닌 무엇이 된다. 기꺼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땅을 파고 안식을 바랄 것이 된다. 그 변화, 작지만 결코 가볍지는 않은 변화가 이 영화 <그림자 원형>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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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자 원형 스틸컷 |
ⓒ 반짝다큐페스티발 |
애써 돌아보지 않는 심리적 그늘
영화는 두 사람의 오가는 대화 속에서 주영의 사연을 드러낸다. 과거 죽어버린 친구와 그로 인한 상실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오늘의 자신을 카메라 위에 노출한다. 준영의 질문으로 확인되는 주영의 내면은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옛일로 얼룩져 있다.
범성욕설 쯤으로 요약할 수 있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개인심리학으로 표상되는 알프레드 아들러에 이어 현대 심리학의 거두가 된 인물로 카를 구스타프 융이 있다. 융은 일찍이 원형 이론을 창시해 인간 보편이 가진 잠재적 특징이 있다고 주장했다. 무의식 가운데 자리한 심리적 이미지를 보편이라 할 만한 특정한 집단이 공유한다는 것으로, 그는 이를 원형(Archetypal)이라고 명명했다.
융은 원형 중에서도 인간이 좀처럼 직면하려 하지 않고 내면 저 멀리 밀어두는 어두운 것을 융은 '그림자 원형(The Archetypal Shadow)'이라 하였다. 작품의 영제 'The Archetypal Shadow'가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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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짝다큐페스티발 포스터 |
ⓒ 반짝다큐페스티발 |
곰팡이 핀 천에 볕을 쬐어주듯이
특수교사 황주영 감독의 18분짜리 단편 다큐는 교사인 자신과 학생인 준영 사이를 오가며 서로 교감하는 과정을 담는다. 서로에게 일어나는 새의 죽음이라는 공통적 사건이 과거와의 대면이며 서로의 교감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색다르다. 친구의 죽음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지 못했다고 말하는 주영과 그런 그에게 위안을 주는 준영의 존재가 평이한 특수교사와 장애학생의 관계를 뛰어넘는다.
황주영은 반다페에 보낸 시놉시스를 통해 제가 작품에 들어가기까지를 설명한다. 그는 "우리가 상처를 받을 때는 과거에 경험한 사건에서 미해결된 감정이 재현되는 경우가 많다"며 "특수교사인 나는 새의 죽음을 통해 어릴 적 나를 만났고, 준영이를 통해 그때의 감정을 위로받을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황 감독은 이어 "나의 내면에 있는 아이가 내게 말을 걸었다"며 "나는 그 아이에게 대답하기로 했다"고 작품의 배경을 설명했다.
연출의도에선 영화가 천착하는 바가 보다 선명히 드러난다. 황주영은 "지금 느끼는 감정은 현재의 것인가, 과거의 것인가? 나의 그림자는 무엇인가? (영화는) 상처입은 치유자가 되기 위해 풀어내야 할 나의 옛날 이야기"라며 "가장 사적이지만 보편적인 이야기로 우리들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그림자 원형, 밀쳐놓고 구태여 들여다보지 않는 상처를 감독은 죽어버린 새와 제자를 통하여 비로소 돌아볼 기회를 얻는다. 그것은 곰팡이 핀 천에 볕을 쬐어주는 일이고, 젖은 빨래에 바람을 맞도록 하는 일이다. 사람은 경계를 넘어 다른 사람과의 연결을 통하여 위안과 치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 <그림자 원형>이 비추는 바가 꼭 그와 같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영화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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