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필의 미래창
유럽 바이오매스위성 첫 사진 공개
산림 입체 파악해 탄소 저장량 측정
유럽우주국(ESA)의 바이오매스위성이 촬영한 볼리비아의 열대우림. 숲과 호수, 강줄기가 어울려 하나의 추상화 작품을 만들어냈다. 유럽우주국 제공
그림물감을 이리저리 뿌려놓은 듯, 연필로 세밀화를 그려 놓은 듯 놀라운 디테일을 담은 지구 사진들이 공개됐다.
지난 4월 발사된 유럽우주국(ESA)의 지구관측위성 바이오매스가 촬영한 사진이다. 아직 시범운영 단계이지만 최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살아 있는 행성’ 심포지엄에서 사진이 공개되자 참석자들의 탄성과 환호가 쏟아졌다.
바이오매스 위성은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하는 산림에 저장된 탄소의 양과 분포를 정밀하게 측정하기 위해 만든 지구관측위성이다. 특히 처음으로 P밴드 전파를 사용하는 합성개구레이더(SAR)를 탑재한 위성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합성개구레이더란 지표면을 향해 직접 전파를 발사한 뒤 반사되는 신호의 양과 지연 시간 등을 감지해 물체의 특성을 파악하는 측정 기술을 말한다. P밴드에 속하는 약 70cm 긴 파장의 전파를 쏘기 때문에 울창한 숲의 꼭대기 부분을 뚫고 들어가 나무 줄기, 가지 등 숲 전체의 구조를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질량까지 측정할 수 있다. 이는 숲에 저장돼 있는 탄소의 양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유럽우주국(ESA)의 바이오매스위성이 레이더를 이용해 산림의 구조를 파악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 유럽우주국 제공
첫번째 사진은 남미 볼리비아의 열대우림 지역이다. 유럽우주국에 따르면 볼리비아는 삼림 훼손 정도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나라 가운데 하나다. 농경지 확장을 위한 벌채가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사진에서 초록색은 열대우림, 빨간색은 삼림 습지와 범람원, 청자색은 초원을 가리킨다. 튜브로 물감을 짜낸 듯 구불구불하게 이어져 있는 검은색 선은 댐 하나 없이 자연 상태 그대로 흐르는 강줄기다. 사진에 담긴 강은 안데스 산맥에서 발원하여 볼리비아 저지대를 거쳐 북동쪽 브라질로 흐르는 베니강이다.
유럽우주국 지구 관측 프로그램 책임자인 시모네타 첼리는 “지구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가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게 무엇인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5월22일에 촬영한 브라질 북부 아마존 열대우림. 바이오매스위성이 처음으로 찍은 사진이다. 유럽우주국 제공
두번째 사진은 브라질 북부의 아마존 열대우림이다.
빨간색과 분홍색은 강변을 따라 형성된 습지와 범람원을 나타내고, 녹색 영역은 울창한 삼림과 험준한 지형을 나타낸다.
인도네시아의 할마헤라 화산지대 열대우림. 유럽우주국 제공
삼림 뿐 아니라 지형까지 한눈에
세번째 사진은 인도네시아 동부 말루쿠제도에서 가장 큰 섬인 할마헤라섬의 열대우림이다.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복잡한 지형이 상세히 드러나 있다.
북쪽 해안 근처에는 여전히 활동 중인 감코노라 화산이 있다. 지표면을 덮고 있는 울창한 나무를 뚫고 위성의 레이더가 화산의 윤곽과 함께 주변 삼림의 지층까지 드러내준다. 삼림 생태계와 지형을 모두 보여주는 사례다.
아프리카 가봉 상공에서 바이오매스위성이 포착한 열대우림.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검은색 선은 이빈도강이다. 유럽우주국 제공
네번째 사진은 아프리카 콩고 분지의 중심부에 있는 가봉의 숲 지대다. 콩고 분지는 아프리카 중서부의 광대한 지역으로, 아마존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열대우림을 이루고 있다.
울창한 숲과 구불구불 흐르는 이빈도강을 포착했다. 훼손되지 않은 열대우림을 상징하는 짙은 녹색 배경과 그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검은색 강이 선명하게 대비된다.
아프리카 차드 사하라사막의 땅속 지형. 유럽우주국 제공
땅속·얼음속도 훤히 들여다본다
다섯번째 사진은 아프리카 차드 북부 사하라사막의 땅속 모습이다. 레이더는 숲속 뿐 아니라 땅속으로도 들어갈 수 있다. 레이더가 사막 표면 아래 최대 5m까지 뚫고 들어가 메마른 땅 밑에 묻혀 있는 고대 강바닥과 지질 구조를 드러내줬다. 유럽우주국은 “이런 투과력은 지하수 지도 제작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고 밝혔다.
바이오매스위성이 촬영한 남극대륙 님로드 빙하와 산맥. 유럽우주국 제공
여섯번째는 얼어붙은 남극대륙이다. 님로드빙하가 산맥을 따라 로스빙붕으로 흘러들어가는 모습을 담았다. 레이더는 얼음 속도 들여다볼 수 있다. 따라서 얼음의 구조와 그 아래 물의 유속도 추적 가능하다.
바이오매스 위성은 이런 방식으로 5년간 전 세계 삼림 지역을 샅샅이 훑으면서 기후 위기에 대처하고 숲 생태계를 보전하는 데 유용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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