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이지은 기자] 수많은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무대 위에 선 스타들은 그 어떤 직업보다 눈부신 조명을 받는다. 하지만 그 화려함 뒤에는, 당사자조차 쉽게 입을 열지 못하는 ‘정산금’ 문제라는 씁쓸한 현실이 숨어있다. 팬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감동을 주는 이들이 정작 자신들의 ‘노동 대가’에서는 소외되고 있는 것.
연예계 정산 문제는 오랜 시간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구조적 병폐다. 연예인과 소속사 간 계약서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수익 배분 과정이 투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특히 음원, 공연, 광고 수익 등 다양한 경로에서 발생하는 수입이 제대로 정산되지 않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한다. 또한, 스타가 활동하는 동안 발생하는 각종 비용이 과다하게 책정되거나, 회사 측이 비용 명목으로 수익 일부를 임의로 차감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연예인들이 이런 문제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개인 채널이나 인터뷰를 통해 직접 목소리를 내는 사례가 늘고 있다. 팬들도 외면해선 안 된다. 우리가 사랑하는 스타들이 화려한 무대 뒤에서 어떤 불합리와 싸우고 있는지, 그들이 땀 흘려 이룬 성과에 걸맞은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관심과 지지가 필요한 때다.
최근 공개된 가수 이승기와 비오의 사례는 오랜 기간 연예계의 골칫거리로 남아있는 정산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여실히 드러내며, 유명 스타조차 예외가 아님을 보여준다. 국민 남동생에서 아빠가 된 가수 이승기와 독보적 음색으로 주목받는 비오는 연예계 정상급 아티스트로 꼽히지만 두 사람이 제기한 정산금 문제는 충격적이다.
가수 비오(BE'O)의 현 소속사 빅플래닛메이드엔터가 미정산금을 두고 벌어진 전 소속사 페임어스엔터와의 소송에서 승소했다.
서울중앙지법원은 26일 비오의 전 소속사 페임어스엔터가 빅플래닛메이드엔터를 상대로 제기한 3억 원 상당의 정산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전부 기각했다. 또 소송 비용도 페임어스엔터가 부담하도록 했다.
선고 후 빅플래닛메이드엔터 측은 “판결의 구체적인 내용은 판결문을 통해 추후 상세히 확인될 예정”이라며 “당사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향후에도 소속 아티스트의 권익 보호를 위해 모든 법적 대응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5월, 빅플래닛메이드엔터는 “페임어스엔터와 비오 간 미정산금에 대한 법적 다툼을 진행하고 있다”라며 소송 사실을 밝혔다. 비오는 2023년 2월 래퍼 산이가 설립한 회사 페임어스엔터와의 전속계약을 종료, 빅플래닛메이드엔터로 이적했다.
빅플래닛메이드엔터는 “비오의 수입액에서 비용을 공제한 뒤 남은 금액에서 수익을 배분하기로 계약했으나, 페임어스가 전체 매출액을 일정 비율로 나눈 뒤 비오에게 지급될 몫에서 전체 비용을 모두 뺀 금액만 지급했다”라며 이 같은 미정산 수익금이 최대 수억 원에 달한다고 알렸다.
반면, 산이 측은 “해외 프로듀서에게 비오의 곡 음원 수익 로열티 지급이 우선 아니냐”라며 “프로듀서 역시 빅플래닛 몫은 빅플래닛이 지급해야 마땅하다고 하는데 ‘돈은 빅플래닛이 받지만 로열티는 페임어스가 해결해라’가 맞나”라고 응수했다.
또, 산이는 당시 빅플래닛메이드엔터 사내이사였던 MC몽이 자신에게 보낸 모욕성 메시지를 공개하며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DM 안 보냅니다. 아버지 장애를 협박 용도로 쓰지 않습니다. 법적으로 당당한 사람이 왜 바로 지웠습니까?”라고 언쟁을 이어가기도 했다.
가수 겸 배우 이승기는 전 소속사인 후크엔터테인먼트로부터 18년간 음원 수익을 정산 받지 못했다고 폭로해 연예계에 큰 파장이 일었다.
이승기는 2022년 데뷔 이후 줄곧 몸담아온 후크엔터테인먼트에서 18년 동안 음원 수익 정산을 하지 않은 것은 물론, 정산 자료 및 정산금을 받지 못했다는 사안을 담은 내용 증명을 보내고 전속계약 해지를 통보한 바 있다.
이후 후크엔터테인먼트는 미지급 정산금과 지연이자 등의 명목으로 자체 계산한 약 54억 원을 지급했으나, 돌연 광고 수익을 너무 많이 정산했다며 9억 원의 반환을 주장하며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지난 4월 진행된 정산금 소송 1심에서 재판부는 “후크엔터테인먼트는 이승기에게 5억 8100만 원을 추가 지급하라”라며 이승기의 손을 들어줬다.
이승기는 정산금 관련 법적 다툼 과정에서 탄원서를 낭독하며 “믿었던 회사와 권진영 대표가 오랜 시간 동안 나를 속여왔다는 것에 대해 큰 배신감을 느낀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고 저와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큰 용기를 냈다. 이 사건을 통해 더 이상 저와 같이 어린 나이에 데뷔한 후배 연예인들이 비슷한 불이익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직접 호소했다.
이 결과, 연예 기획사가 소속 아티스트에게 연 1회 이상 정산 내역과 그 근거가 되는 회계 내역을 필히 ‘서면’(전자문서 포함)으로 제공해야 하는 의무를 부과하는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 소위 ‘이승기 사태 방지법’의 입법을 이끌어냈다.
무대 위에서는 박수받는 주인공이지만, 정산서 앞에서는 이름값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 정산 시스템의 투명성과 공정성에 대한 구조적 개선 없이는, 제2·제3의 피해자는 계속해서 생겨날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연예인은 돈 많이 벌잖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당하게 벌 수 있는 권리’조차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결국 ‘착취의 무대’에 불과하다.
이지은 기자 lje@tvreport.co.kr / 사진= TV리포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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