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어크하이어’ 바람
그래픽=이철원
애플이 기업 가치 140억달러(약 19조3000억원)에 달하는 인공지능(AI) 스타트업 ' 퍼플렉시티AI’의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 인수가 성사된다면 애플의 역대 최고액 기업 인수 사례가 된다. AI와 관련해 혁신적 기술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아온 애플이 경쟁사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퍼플렉시티AI 인수를 검토 중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 아라빈드 스리니바스 영입을 염두에 둔 것이다.
최근 메타도 데이터 라벨링 스타트업 ‘스케일 AI’에 150억달러(약 20조7000억원)를 투자하며 인재들을 영입하는 등 올 들어 빅테크들의 ‘어크하이어(acqui-hire)’가 잇따르고 있다. 이는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기업을 인수하는 것을 뜻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2일 “유능한 AI 연구자를 유치하려는 경쟁이 뜨거워지면서 연봉 1000만달러 직원의 이직을 막기 위해 최대 200만달러의 리텐션 보너스(잔류 보너스)를 지급해야 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래픽=이철원
◇AI 차별화의 동력은 ‘인재’
빅테크들이 AI 인재를 잡기 위해 천문학적 투자를 하는 이유는 치열한 AI 경쟁에서 차별화를 이끌 유력한 방안으로 보기 때문이다. AI 개발의 필수 인프라로 꼽는 AI 반도체나 데이터센터 같은 경우는 후발 주자가 단기간에 탁월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애플이 퍼플렉시티AI 인수를 검토하는 것도 스리니바스 CEO를 영입하기 위한 포석으로 분석된다. 퍼플렉시티AI를 창업한 스리니바스 CEO는 오픈AI, 딥마인드 연구원 출신으로 AI업계의 핵심 인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메타는 직원 수 900명에 불과한 데이터 라벨링 스타트업 스케일 AI에 20조원을 투자하고 이 회사 CEO 알렉산더 왕(28)을 영입했다. 초인공지능을 연구하는 메타의 신설 연구소에 알렉산더 왕을 수장으로 앉힌 것이다. 데이터 라벨링은 AI가 학습할 수 있도록 이미지, 텍스트, 음성 등의 데이터에 의미 있는 정보를 표시해주는 작업으로 AI 모델의 품질을 향상하는 데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왕 CEO가 스케일AI로 선보인 데이터 라벨링 기술을 보고 회사를 통째로 사들인 것이다. FT는 이를 역대 최고 금액의 ‘어크하이어’ 사례 중 하나로 꼽고 있다.
◇ “1억달러 입사 보너스” 제시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AI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어크하이어 전략을 공격적으로 구사해왔다. 최근 메타는 오픈AI 공동 창업자인 일리야 수츠케버가 창업한 세이프 수퍼 인텔리전스(SSI) 인수도 시도했다. 인수에 실패한 메타는 SSI CEO이자 공동 창업자인 대니얼 그로스와, 깃허브 CEO를 지낸 냇 프리드먼을 영입하기 위해 두 사람이 공동 운영하는 벤처 캐피털 NGDG의 지분을 인수했다. 메타는 AI 연구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오픈 AI의 연구원들에게 1억달러(약 1400억원)의 입사 보너스도 제안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난해 6억5000만달러를 들여 AI 스타트업 인플렉션을 인수했다. 무스타파 슐레이만 인플렉션 CEO를 비롯해 AI 개발 인력 대부분을 함께 데려간다는 조건이었다. 무스타파 CEO는 구글 딥마인드 공동 창업자로 AI 업계에서 널리 알려진 연구자다. 그는 인플렉션을 MS에 팔면서 MS의 AI 조직을 이끄는 CEO가 됐다. 오픈AI도 애플의 전(前) 수석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가 창업한 디자인 회사 io를 64억달러에 인수했다. AI 스타트업은 아니지만 앞으로 주력 상품이 될 AI 하드웨어를 만들 수 있는 인재를 확보한 것이다.
FT는 빅테크들이 AI 인재 영입에 돈을 쏟아붓는 배경에는 AI 발전 속도 때문에 생긴 ‘FOMO(Fear of Missing Out)’ 현상이 있다고 분석했다. FOMO는 남들이 누리는 좋은 기회를 자신만 놓치고 있다는 불안감이나 두려움을 의미한다. AI 인재에 대한 거액 투자가 수익으로 당장 이어지지 않지만, 인재를 놓치면 경쟁사에 뒤처져 낙오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과도한 투자를 무릅쓰고 있다는 것이다.
☞어크하이어(acqui-hire)
‘acquire(인수하다)’와 ‘hire(고용하다)’를 합친 신조어. 기업이 특정 회사의 제품이나 기술이 아니라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그 회사를 통째로 인수하는 전략이다. 주로 기술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며, 이 회사의 핵심 인력은 인수 주체인 빅테크나 대기업의 연구소, 기술 부서로 편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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