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실업탁구연맹(KTTL)과 KTTP
같은 날 국가대표 선수들이 서로 다른 대회 출전
핵심은 분열이 아닌 통합지난 6월 15일 끝난 KTTP 프로탁구시리즈에서 박규현(미래에셋증권)과 이다은(마사회)이 각각 남녀부 정상에 올랐다. 사진은 시상식 기념촬영 모습./KTTP 인스타그램
# 탁구는 ‘보는 스포츠’보다는 ‘(직접)하는 스포츠’의 이미지가 강합니다. 전국 곳곳에 공영이든 민영이든 크고 작은 탁구장이 많고, 구기종목 중 가장 작은 공(2.7g)의 매력에 빠진 이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국민건강 기여도가 높아 생활체육 대표종목으로 불립니다.
그런데 사실 탁구는 ‘보는 스포츠’로도 강점이 많습니다. 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등 A급 국제대회의 시청률이 아주 높지요. 한국탁구는 이에리사 안재형 유남규 양영자 현정화 유승민 등 걸출한 스타플레이어를 배출했습니다. 지금도 신유빈은 스포츠스타 랭킹에서 축구의 손흥민을 제치고 인기 1위를 기록할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잊을 만하면 열리는 국제대회가 아니라, 평상시 국내리그를 통해 탁구가 ‘보는 스포츠’로 인기를 누릴 수는 없을까요. 바로 프로탁구 이야기입니다.
# 단식과 복식이 있는 탁구는 개인종목이자, 단체종목입니다. 올림픽 등 종합대회에서도 그렇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프로시리즈의 경우 국제대회는 개인전으로, 국가별 대회는 단체전으로 열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전자는 국제탁구연맹(ITTF)이 자회사를 통해 연중 시행하는 시리즈인 WTT이고, 후자는 중국의 슈퍼리그, 일본의 T리그, 독일 탁구 분데스리가(TTBL), 인도 프로리그 등입니다.
이에 2022년 1월 시작한 한국프로탁구리그(KTTL)는 단체전으로 치러졌습니다. 우수선수들이 포진한 기업팀은 코리아리그, 지역연고에 기반한 시군청팀은 내셔널리그로 분리됐습니다. 코리아리그는 1부, 내셔널리그는 2부의 성격을 띠었습니다. 어차피 장기적으로는 축구처럼 승강제를 바탕으로 하는 디비전리그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으니 시작부터, 1. 2부를 갖췄으니 오히려 좋았습니다.삼성생명은 남녀 모두 한국탁구를 대표하는 성인팀이다. 삼성생명은 KTTP에 참여하지 않았다. 사진은 남자 삼성생명의 KTTL 우승 장면./한국실업탁구연맹 제공
# 두나무가 타이틀스폰서를 맡은 KTTL(위원장 안재형)은 두 시즌을 치른 뒤 중단됐습니다(2023년 4월). 두나무가 세 번째 시즌도 후원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후원금도 내놓았지만 스폰서를 유치한 대한탁구협회가 세 번째 시즌을 미루고 또 미뤘습니다. 명분은 2024 부산 세계선수권과 파리 올림픽에 집중한다는 것이었지만, 주도권을 잡으려는 탁구계 내부 알력싸움과 이로 인한 준비부족이 실질적인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두나무는 시즌당 10억원(부가세 별도)을 내놓았습니다. 첫 두 시즌은 10억원이 프로리그에 7억원, 대한탁구협회에 2억원, 유치자 인센티브에 1억원씩 나눠졌습니다. 인센티브는 지난 4월 스포츠윤리센터가 탁구협회 비리로 징계를 주문한 바로 그 내용 중 하나입니다. 세 번째 시즌은 대한탁구협회가 인센티브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는 가운데, 프로리그에 5억원이 배정됐다고 알려졌습니다.
2025년 6월 첫 발을 내딛은 새로운 프로시리즈 KTTP가 이를 원동력으로 삼았습니다. 참고로 KTTP는 개인전입니다.KTTP의 홍보 포스터. KTTP는 주관 방송사 선정 없이 자체 유튜브채널로 대회를 중계했다. KTTL은 유튜브는 물론 중계권료를 받고, TV중계를 병행했다./KTTP 인스타그램
# 리그 이름이 어떻게 됐든, 또 단체전이냐 개인전이냐 하는 것은 본질이 아닙니다. 프로야구 두산의 감독이 KBO총재를 맡는 격으로, 현역감독이 프로단체의 위원장을 맡은 것도 초창기이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한국탁구의 꽃인 성인탁구가 ‘프로’라는 이름으로 확실하게 두 쪽이 났다는 사실입니다.
KTTP는 참가팀들이 아예 한국실업탁구연맹을 탈퇴해 한국프로탁구연맹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남자 6개, 여자 4개 팀이 이 대열에 동참했고, 삼성생명(남녀) 한국거래소(남), 한국수자원공사(남), 포스코인터내셔널 등 5개팀은 실업연맹 잔류를 택했습니다. 이들 5개팀에는 KTTL 남녀 우승팀이 포함돼 있고, 조대성 이상수(이상 삼성생명) 임종훈(한국거래소) 김나영 유한나(이상 포스코인터내셔널) 등 국가대표들이 속해 있습니다.
5개 팀은 기업여건 상 별도의 프로연맹을 만들어 진행하는 ‘프로화’는 어렵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에 현정화 감독(마사회)과 함께 KTTP의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형석 화성도시공사 감독은 "나머지 기업팀들도 곧 KTTP에 합류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습니다.
확실한 것은 1964년 5월 발족한 61년 전통의, 유일한 한국 성인탁구단체(한국실업탁구연맹)가 확실하게 둘로 쪼개졌다는 사실입니다. 6월 8일과 13일에는 KTTP와 한국실업탁구연맹이 각각 수도권과 경북 경산에서 같은 날 서로 다른 대회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같은 날 서로 다른 대회에서 경쟁한 것이죠.지난 6월 8일부터 13일까지 경산에서 열린 한국실업탁구연맹의 춘계회장기대회 장면./한국실업탁구연맹 제공
# 단체가 둘로 나눠지는 과정에서 웃지못할 해프닝도 발생했습니다. 예컨대 기자간담회를 통해 ‘KTTL 3년 만의 부활’로 보도됐다가, 한국실업탁구연맹의 안재형 회장(2025년 2월 당선)이 항의하자 시리즈 명칭이 KTTP로 바뀌었습니다. 또 지난 4월 대한탁구협회가 주최하는 종별선수권 때는 KTTP 팀들이 실업탁구연맹을 탈퇴해놓고, 특별한 요청을 해 기존 실업탁구연맹팀들과 같은 부로 대회를 치렀습니다.
안재형 회장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대한탁구협회는 산하단체인 한국실업탁구연맹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하죠. 그런데 대한탁구협회의 경제적 지원으로 새로운 단체가 만들어졌습니다. 본질적으로 모두 같은 실업팀으로 기업 및 시군청팀의 단합을 이끌어야 하는데, 오히려 기업팀 사이에도 다른 행보를 만들어냈습니다. 어차피 KTTP도 단계적인 프로화를 추구한다고 하는데 기존 한국실업탁구연맹과 KTTL도 그랬습니다. 왜 나눠야 할까요? 이렇게 혼란스럽게 일을 추진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고 말했습니다.최고 인기스타 신유빈은 중국 프로리그 출전을 이유로 이번 KTTP에 출전하지 않았다. 사진은 KTTL에 출전한 신유빈의 경기 모습./KTTL 홈페이지
#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보는 스포츠로서 화려한 프로리그는 장기적으로 한국탁구가 가야할 길이 맞습니다. 하지만 하나로 합쳐도 쉬운 일이 아닌데, 지금처럼 두 단체로 갈라져 있다면 정말이지 그 성공은 요원한 일입니다. 타 종목 프로리그를 보면 축구를 제외한 모든 종목이 프로단체는 국가종목단체(예컨대 대한탁구협회)와 분리돼 있습니다.
축구만 한국프로축구연맹이 대한축구협회에 속해 있습니다. 탁구도 국제이벤트가 많은 까닭에 축구모델이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축구도 벽을 허물고 있습니다. 프로연맹이 주관하는 1, 2부와 대한축구협회가 주관하는 세미프로(3, 4부) 및 아마추어리그(5부 이하) 사이에 승강제 단절이 있어 2026년부터 없애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탁구는 시작부터 불필요한 담을 쌓고 있습니다. ‘너희가 하면 안 되고, 우리가 해야 한다’는 유치한 발상이죠. 핵심 탁구인이 자신들의 공명심이나, 개인적인 이해득실을 떠나, 보다 큰 차원에서 탁구의 프로화를 진행해야 합니다.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