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클라우드? 그거 완전 뜬구름이예요. 이사람 저사람의 정보를 서버 하나에 뒤섞어 놓으면, 보안이 되겠어요? 정부가 그런 뜬구름 같은 서비스를 썼다가 보안사고나 서비스 장애라도 발생하면 누가 책임을 집니까" 2012년 우리 정부가 주요 정부기관과 국공립대학, 금융회사 등에 클라우드 서비스 차단을 결정하면서 내놓은 말이다. 2008년 부터 글로벌 IT시장에서 주목받던 클라우드 서비스는 전세계적으로 골칫거리였다. IT시스템 구축과 유지비용이 90% 이상 절감된다는 매력이 있었지만, 보안이나 서비스 장애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 결국 한국 정부는 골칫거리를 제거하기로 결정해 버렸다.
그런데 2013년, 세계 최대 정보기관 미 중앙정보국(CIA)이 6억달러를 내고 아마존웹서비스(AWS)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하기로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CIA가 쓴다는데 누가 보안위협을 제기할 수 있단 말인가? 단번에 클라우드의 취약점이던 신뢰성 문제가 해결됐다. AWS는 'CIA가 신뢰하는 서비스'를 가진 회사가 됐다. 이후 글로벌 클라우드 시장은 급팽창했고, 그 시장은 AWS 중심으로 돌아간다.
2025년 6월 16일(현지시간) 미국 국방부는 오픈AI와 국방용 AI기슬을 개발하겠다며 2억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AI기업 팔란티어는 미국 육군과 10억달러 규모의 AI 및 데이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AI 챗봇 '코파일럿'을 국방부가 사용할 수 있도록 맞춤형 버전을 개발하는 계약을 맺었다. 미국 국가안보국(NSA), 백악관 산하 기구들은 오픈AI, 엔트로픽, 구글, MS 같은 기업들과 속속 AI개발 및 사용 계약을 맺고 있다. 챗GPT가 시장에 선보인 이후 줄곧 따라다니던 "AI는 개발비용이 막대한 것에 비해 마땅한 수익모델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구심을 미국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 주고 있는 모양새다.
조승래 국정기획위원회 대변인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정기획위원회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5.6.17/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사진=뉴스1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18일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5년간 16조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하겠다고 국정기획위원회에 보고했다. 첨단 그래픽처리장치(GPU) 5만개를 확보하고, AI 데이터센터를 건설해 'AI 고속도로'를 구축하고, 공공과 민간의 학습데이터를 수집·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세부계획도 내놨다.
그런데 아쉽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AI기술을 연구하는데, 누가 그 기술을 사서 쓰도록 할 것인지 계획은 없다. 정부가 직접 쓰겠다는 계획은 없이 국민들에게만 쓰라고 한다. 이미 오픈AI, 구글, 퍼플렉시티 같은 글로벌 서비스를 익숙하게 쓰고 있는 국민들에게, 한국의 AI서비스를 쓸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미국 정부의 기업 육성 방식을 배웠으면 한다. 기술개발 비용을 지원하거나 규제하는 수준이 아니다. 시장이 망설이고 있을 때 정부가 첫번째 소비자가 되는 것이다. 정부가 민간 클라우드 기업이나 AI기업의 서비스를 써준다. 그러면 시장은 ‘이 기술은 일정 수준 이상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인정받았다’는 신호를 받는다. 또 기업들은 정부라는 까다로운 고객의 요구사항을 맞추는 과정에서 기술의 신뢰성과 품질을 높이게 된다. 결국 정부가 첫번째 소비자가 되는 순간, 생태계 전체가 살아나는 효과를 낳는다.
AI 3등 국가로 뒤쳐진 지금,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첫번째 산업 욱성책은 까다로운 첫번째 소비자가 되는 것 아닐까 싶다. 정부가 한국 AI의 기술과 서비스를 증명해 줄 첫번째 소비자가 돼 스스로 생태계에 발을 담궜으면 한다. 공공서비스에 한국 AI 기술을 적용하고,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익숙해질 수 있도록 해줬으면 한다. 직접 AI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깐깐한 규격을 요구하고, 소비자로서 사후 피드백도 해야 한다. 미국 정부가 10여 년 전 클라우드를 선택했던 결단, 그리고 지금 AI를 직접 쓰겠다고 나선 행동이 바로 한국 정부가 배워야 할 메시지다. 기술은 그 자체로 성장할 수 없다. 믿고 써주는 소비자가 있어야 한다. 정부가 첫번째 AI소비자가 돼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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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9@fnnews.com 이구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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