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 영문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임기범 인공지능경영학회 이사 본인 제공
지난달 31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인공지능(AI) 국가대표 양성 사업' 소식을 접하고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총 300억원의 예산으로 박사후연구원 약 400명을 해외에서 유치하겠다는 계획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기본 연봉은 9천만원을 보장한다. 이는 국내 박사후연구원의 평균 연봉으로 알려진 약 5천만원의 약 1.8배 수준이다. 앞으로 산업계와 협력해 추가 인센티브도 지원할 예정이다."
정부가 이를 마치 파격적인 혜택인 양 홍보하는 모습을 보니, 영화 '머니볼'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만약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 빌리 빈이 "우리는 연봉 10만 달러를 주니까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리그 전체의 웃음거리가 됐을 것이다.
정작 중요한 건 해외 인재의 현실이다.
우리가 유치하려는 해외 인재라는 인력이 현재 받는 조건을 살펴봤다. 정부가 국내 박사 후 연구원 연봉과 비교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미국 인공지능 융합 분야 박사후연구원의 현실은 이렇다. 대학이나 공공기관 박사 후 연구원도 초임이 6만 달러에서 7만5천여 달러(약 8천만∼1억원)다. 경력에 따라 6만5천∼7만5천 달러로 상승한다.
하지만 산업계는 다르다. AI나 컴퓨터 분야 기업의 박사 후 연구원은 9만∼13만 달러(약 1억2천만∼1억8천만원)를 받는다.
실리콘밸리에서 메타(Meta)의 AI 연구 과학자 평균 연봉은 33만 달러(약 4억7천만원)다. 일반적인 AI 스타트업에서도 박사 학위 소지자는 최소 연봉 2억원은 받는다는 게 현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9천만원을 제시하면서 '한국으로 오라'고 할 수 있을까?
이건 메이저리그 올스타에게 2군 연봉을 제시하는 격이다.
더 중요한 건,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통계에 따르면 국내 AI 개발자의 평균 연봉은 약 8천500만원이며 원티드 조사로는 AI 관련 직무 합격자 평균이 7천770만원이라는 점이다. 정부가 제시한 9천만원은 국내 기준으로도 그다지 높지 않은 수준이다.
400명이라는 숫자부터 잘못됐다.
그런데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400명이라는 숫자가 의미 있는 숫자일까?
300억원 예산을 400명에게 나눠주는 것보다 차라리 절반인 200명에게 집중해서 실제 경쟁력 있는 패키지를 제공하는 게 낫지 않을까?
미국 AI 엔지니어의 평균 연봉이 18만∼32만 달러(약 2억5천만∼4억5천만원) 수준이라면, 우리도 최소 그 절반 수준인 2억∼3억원 패키지는 제공해야 한다.
그렇다면 400명이 아니라 100∼150명 정도가 현실적인 숫자가 아닐까?
'지모현현(智謀賢顯)', 즉 지혜로운 계략과 현명함이 드러나야 할 때다.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다.
10명의 세계적 AI 연구자가 400명의 평범한 연구자보다 더 큰 혁신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AI 분야의 현실이다.
그러나 돈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더 심각한 구조적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장기 연구를 보장하지 않는 시스템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단기 성과에 대한 과도한 압박이다. 정부 과제든 기업 프로젝트든 '3개월 안에 데모를', '1년 안에 상용화' 등을 요구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스탠퍼드 AI 지표 2024(Stanford AI Index 2024)에 따르면, 오픈 AI(OpenAI)의 GPT-4 훈련에는 약 7천8백만 달러, 구글의 제미나이(Gemini) Ultra에는 1억9천1백만 달러의 컴퓨팅 비용이 들었다. 이런 규모의 투자와 시간이 필요한 기초 연구에서 단기 성과를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의 경직된 정년제도다. 한국 대학교수의 정년은 65세다. 수십 년간 연구에 매진해온 교수들이 정년이라는 틀에 걸려서 연구 활동이 어려워진다.
정년 후 명예교수가 돼도 3년 이내 1학기당 1강좌로 제한되는 경우가 많아 연구 연속성이 끊어진다. 이런 베테랑 연구자들의 축적된 경험과 지식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이다.
미국의 종신 재직권(테뉴어) 제도와 비교가 안 될 수가 없다. 미국에서는 테뉴어를 받은 교수가 본인이 원하면 80세까지도 교수직을 유지할 수 있다. 73세의 박사 지도교수가 "앞으로 3∼4년 후에 은퇴한다"며 여전히 활발하게 연구하는 모습이 일반적이다.
테뉴어 제도는 연구자에게 자율성을 보장함으로써 '안전한' 연구만을 수행하지 않고 도전적인 연구를 할 수 있게 한다. 특히 AI처럼 기초 연구부터 응용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분야에서는 이런 장기적 안정성이 더욱 중요하다. 경험 많은 연구자가 정년에 구애받지 않고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식 종신 재직권 제도를 벤치마킹해 우수한 연구자들에게는 장기적 연구 안정성을 보장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정부와 기업은 AI 연구자들에게 최소
3∼5년의 자유로운 연구 기간을 보장해야 한다.
구글의 20% 타임, 3M의 15% 타임처럼 연구자가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경직된 위계 문화
실리콘밸리의 AI 연구 문화를 보면 놀라운 점이 있다. 20대 박사과정 학생이 50대 시니어 연구원과 동등하게 토론하고, 때로는 더 급진적인 아이디어를 주도한다고 알려져 있다. 나이나 직급보다는 아이디어의 질이 우선시되는 문화다.
반면 한국의 연구 환경은 어떤가?
아직도 선배가 '하자는 대로'해야 한다는 문화가 강하다. AI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분야에서 이런 경직성은 치명적이다. 젊은 연구자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위계질서에 묻혀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를 바꾸려면 연구실 내 수평적 문화를 장려하고, 젊은 연구자들의 창의적 아이디어가 묻히지 않도록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특히 한국이 강점을 가진 반도체, 배터리, 로보틱스 분야와 AI를 연결한 융합 연구에 집중하면서, 스탠퍼드, MIT, 옥스퍼드 등과의 공동 연구 프로그램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실력 있는 연구자를 유치해도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스탠퍼드 AI 지표 2025에 따르면, AI 모델 규모는 계속 급격히 증가하고 있고, 훈련 연산량은 5개월마다 두 배가 되고 있다.
해외에서 오는 연구자들이 '한국에 와서도 세계 수준의 연구를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컴퓨팅 자원, 데이터 접근성, 연구 장비 등에서 해외 수준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진짜 실력 있는 연구자들은 오지 않을 것이다.
연봉 9천만원으로 AI 인재를 유치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의 본질을 보여준다. 우리는 아직도 AI 혁명의 규모와 속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지난 15일 이재명 정부에서 초대 AI 미래 기획수석에 하정우 네이버 클라우드 AI 혁신센터장이 임명됐다. 하 수석은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 X 개발을 총괄하며 이론과 실무, 정책을 두루 갖춘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그는 "AI 수석은 단순 공무 집행을 넘어서 실무적 로드맵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현장에서 직접 AI 인재들과 함께 일하며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환경에서 성과를 낼 수 있는지를 몸소 체험한 인력이 국가 AI 전략을 이끌게 된 만큼, 앞서 지적한 구조적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연봉 9천만원이라는 비현실적 조건이 아니라, 진짜 우수한 인재가 한국을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매력적인 방안을 제시해주기를 바란다.
진정한 AI 강국이 되려면 예산투입만으로는 안 된다. 연구 문화, 사회 시스템, 사고방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400명이라는 숫자에 매몰되지 말고, 실질적으로 경쟁력 있는 소수 정예를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인공지능 시대의 관중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임기범 인공지능 전문가
▲ 현 인공지능경영학회 이사. ▲ ㈜나루데이타 연구소장 겸 개발총괄 이사. ▲ ㈜컴팩CIO. ▲ 신한 DS 디지털 전략연구소장 역임.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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