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균 게이트'를 수사하는 검찰이 명태균 씨가 지역 경찰 간부들과 부적절한 거래를 한 정황을 파악하고도 수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9월 명태균 게이트가 시작됐을 때도 명 씨는 경찰 간부들과 수차례 통화했다. 이 중에는 경무관 계급의 고위 경찰도 포함됐다.
명 씨는 지역 경찰 간부들과 오랜 기간 친분을 이어온 것으로 보인다. 뉴스타파가 확보한 검찰 수사기록과 명태균 PC 등을 종합하면 ▲2022년 4월경 누군가 경남경찰청 수사 상황을 정리해 명 씨에게 전달한 사실 ▲명 씨가 명절에 경찰들에게 금품을 건넸던 정황이 담긴 통화 녹음파일 ▲경찰 간부들이 명 씨에게 인사 청탁을 하는 메시지 등 다수 확인된다.
경남선거관리위원회가 검찰에 수사 의뢰한 시점과 명태균 씨가 경남경찰청 수사부장을 언급한 시점 ⓒ뉴스타파
명태균 휴대전화에서 '경남경찰청 수사 진행' 문서 발견
지난해 11월 22일 더불어민주당은 명 씨가 수사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관련 녹취를 공개했다. 2023년 12월 9일 명 씨가 지인과의 통화에서 "경찰청장부터 검찰, 김영선에게 충성맹세시켰다"고 말하는 내용이다.
이에 김영우 당시 경남지방경찰청장은 MBC와의 인터뷰에서 "부임 인사차 김영선 전 의원을 만났고, 옆에 있던 명 씨와도 명함을 교환했지만 전화한 적도 없다"며 "충성 맹세는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명 씨와 경찰의 유착 정황은 검찰 수사기록 곳곳에서 포착된다. 뉴스타파는 명 씨 스스로 경찰 고위 간부를 언급하는 녹음파일을 입수했다. 이에 더해 녹음 내용을 뒷받침하는 증거까지 수사기록에서 발견했다.
'명태균-경찰 유착' 첫 번째 정황은 명 씨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경남경찰청의 수사 진행 보고서다.
지난해 11월, 검찰은 명태균 자택 PC를 압수수색해 확보한 PC 카카오톡 파일을 수사보고서로 작성했다. 이 보고서에는 지난 대선 직후인 2022년 4월 명 씨가 카카오톡 '내게 쓰기' 기능을 이용해 '지역 동향'이라는 이름의 문건 파일을 자신의 휴대전화에 저장한 사실이 담겨 있었다.
이 문건에는 함안판 대장동사건이라 불리는 도시 개발 관련 특혜 의혹 등 경남 함안군에서 벌어진 각종 개발, 인허가 특혜 의혹이 사건 별로 정리돼 있었다. 경찰이 작성한 문건이 명 씨의 손에 들어간 것이다.
2022년 4월 명 씨는 카카오톡 '내게 쓰기' 기능을 이용해 '지역 동향'이라는 이름의 문건 파일을 휴대전화에 저장했다. 이 문건에는 경남 함안군에서 벌어진 각종 개발, 인허가 특혜 의혹이 사건별로 정리돼 있었는데 각 사건마다 '경남경찰청 수사 중'이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뉴스타파
그런데 문건 속 각 사건마다 ‘경남경찰청에서 수사 진행 중'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검찰 수사보고서에는 이 문건을 명 씨에게 전달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선 별다른 조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명태균 육성 "내가 수사부장한테 전화했어"
두 번째 정황은 명 씨가 '경찰청 수사부장'으로부터 수사 대응 코치를 받았다고 말하는 대목이다.
2023년 12월 경남도선거관리위원회는 김영선 의원 정치자금 계좌에서 수상한 돈거래를 포착하고 창원지검에 수사를 의뢰했다. 한 달 후인 2024년 1월 명 씨는 강혜경 씨와 통화하며 경무관 직급인 경남경찰청 수사부장을 언급했다.
"경남청에 제일 높은 사람이 수사부장이야. 청장 다음에 수사부장한테 전화했어. 아무것도 없어. 내가 뭐 내가 뭘 누구한테 돈 받겠어? (중략) 가서 김영선이한테 물어봐. 경찰이고 검찰이고 내가 안 했으면 재 여태까지 살아남은가."
- 명태균 (24.1.12. 강혜경 씨와의 통화)
이날 통화에서 명 씨는 경찰청 수사부장으로부터 명 씨 측에 억대의 금품을 건넨 배기동 씨와 연락을 나누지 말라는 조언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 배기동 회장 어제 전화 왔던데, 내가 전화 안 받았어. 전화를 받고 하지 말래. 경찰 수사부장이. "
- 명태균 (24.1.15. 강혜경 씨와의 통화)
명태균 육성 "이번 설에 경찰들에 돌릴 돈이 없어"
명절에 지역 기자들과 경찰들에게 금품을 건네야 하는데, 김영선 의원이 돈을 주지 않는다고 푸념하는 명 씨의 발언도 오랜 경찰 유착을 의심케 한다. 2024년 2월, 명 씨는 강혜경 씨에게 전화를 걸어 "김영선 의원으로부터 세비뿐만 아니라 명절 보너스까지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들과 경찰들에게 줄 떡값이 필요한데, 김 전 의원이 돈을 덜 줬단 것이다.
정상인이면 380만원 세비에다가 플러스 보너스 380만원 줘야지. 아니야? 그러면 경남신문 이○○이부터 경찰들까지....이번 설에는 내가 돌릴 돈이 하나도 없어." (명태균-강혜경 24.2.1.)
- 명태균 (24.2.1. 강혜경 씨와의 통화)
'명태균 게이트' 시작된 후에도 경찰들과 통화
명 씨는 검찰 수사가 시작된 후에도 경찰들과 수시로 연락했다. 이 같은 사실은 검찰이 명 씨의 휴대전화를 디지털포렌식해서 작성한 수사보고서에서 확인된다.
여기에는 명 씨가 지난해 9월 한 달간(2024.9.13.~2024.9.30.) 경남경찰청 수사부장이었던 김 모 경무관과 총 5차례에 걸쳐 통화를 나눈 사실이 나온다. 뉴스토마토가 윤석열 부부의 공천 개입 의혹을 최초 보도한 직후였다.
지난해 9월 한 달간(2024.9.13.~2024.9.30.) 명 씨가 사용한 휴대전화의 수발신 내역과 빈도수. 경남경찰청 수사부장이었던 김 모 경무관과 총 5차례에 걸쳐 통화를 나눈 사실이 확인된다. ⓒ뉴스타파
같은 기간에 명 씨가 통화를 나눈 경찰은 3명이 더 있었다. 경남경찰청 소속이었던 조 모 수사계장과 1번, 창원서부경찰서 소속이라고 저장된 박 모 정보관과는 13번, 이 모 정보과장과는 2번 통화했다.
지난해 9월 한 달간(2024.9.13.~2024.9.30.) 명 씨가 사용한 휴대전화의 수발신 내역과 빈도수. 경남경찰청 소속이었던 조 모 수사계장과 1번, 창원서부경찰서 소속이라고 저장된 박 모 정보관과는 13번, 이 모 정보과장과는 2번 통화한 사실이 확인된다. ⓒ뉴스타파
명 씨가 경남경찰청 재건축 예산 확보에 힘을 써준 정황도 경찰 유착 의혹과 무관해보이지 않는다. 2022년 12월, 김영선 의원은 경남경찰청 재건축을 위한 설계비 3억여 원을 국비로 끌어왔다. 김영선 의원실 보좌관이 명 씨에게 직접 보고한 카카오톡 대화에 관련 내용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또 김영선 의원실 보좌관이 민간인 명 씨에게 국회 예결위 자료와 경남경찰청 소속 시설 계장 연락처를 전달한 사실도 수사기록에서 확인됐다.
2022년 9월 28일 김영선 의원실 보좌관 이 모씨는 카카오톡을 통해 명태균 씨에게 경남경찰청 본관 증축 관련 국회 예결위 자료와 경남경찰청 소속 시설계장 연락처를 전달했다(재구성) ⓒ뉴스타파
뉴스타파는 명 씨가 언급한 당시 경남경찰청 수사부장에게 전화해 명 씨에게 어떤 도움을 줬는지 물어봤다.
김 경무관은 명 씨와의 통화 사실 자체는 인정했지만, 수사에 도움을 주진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내용을 몰라 자문해줄 수 없었고, 명 씨에게 '아이고, 복잡하겠네요.' 정도의 말만 전했다"고 설명했다. 명 씨에 전달된 경남경찰청 수사 관련 문건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라고 답했다.
검찰 기록에 등장한 전 경남경찰청 수사계장 또한 명 씨와 사적인 얘기만 나눴을 뿐, 수사 정보 유출 등 부적절한 일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명 씨와 경찰의 검은 거래 정황이 확인됐지만, 경찰은 여전히 '명태균 게이트' 관련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서울 방배경찰서는 명 씨가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의 공천에 개입한 정황을 수사하고 있다. 서울경찰청은 오세훈 여론조사 비용 대납 의혹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검찰과 비교해도 경찰의 수사 속도는 터무니없이 느리다. 특히 대구경찰청은 홍준표 전 시장에 대한 고소 사건을 계속 뭉개다가 최근 들어서야 참고인 조사에 들어갔다. 압수수색 등 강제 수사를 앞둔 상황에서 홍 전 시장은 미국으로 출국했다. 경찰이 출국금지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곧 시작될 '김건희 특검'이 경찰로부터 받을 만한 수사자료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특검은 명태균 씨와 경찰의 유착 정황까지 모두 수사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뉴스타파 이명선 sun@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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