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근수근 최근야구'에 출연해 이야기하는 심수창 해설위원(가운데)
침묵이 불러온 더 큰 오해
"그때 해명을 했어야 했는데...그냥 입 닫고 있었어요. 긁어부스럼 될까 봐."
최근 KBS에서 새로 시작한 '수근수근 최근야구'라는 콘텐츠를 보다가 들은 말이다. '최강야구'에서 조용히 하차한 심수창 해설위원이 남긴 한마디였다. 팬들 사이에서는 그가 왜 떠났는지를 두고 여러 해석과 소문이 떠돌았지만, 정작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명을 해도 또 다른 말이 따라붙을 거라는 두려움. 그리고 그 침묵은 더 큰 오해로 번졌다.
물론 심수창의 경우는 복잡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중간에 서로 아는 사람들도 엮여 있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있었을 테니 그의 선택을 존중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크리에이터들에게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침묵보다는 소통이, 회피보다는 정면 대응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진입장벽은 낮아졌지만, 생존장벽은 높아졌다
요즘 스포츠 콘텐츠의 출발점은 방송국이 아닌 유튜브다. 카메라 하나면 충분하다. 선수든 팬이든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전,현직 선수가 자신의 일상과 노하우를 공개하고, 열정적인 팬이 응원팀의 심층 분석 영상을 제작하며, 기자 출신이 비하인드 스토리를 정리해주는 채널들이 우후죽순 등장했다.
야구를 넘어 축구, 배구, 농구까지 이 흐름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지역 K리그 팬들이 만든 전문 채널, EPL 해설을 독창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한 콘텐츠, 여자축구나 유소년 축구까지 다루는 틈새 채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진입장벽이 낮아진 만큼 생존장벽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졌다. 수많은 채널이 생겨나는 만큼, 살아남기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고, 작은 실수라도 치명적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전직 축구선수 이천수의 '리춘수' 유튜브 채널
성공할수록 더 위험해지는 역설
처음에는 모든 것이 가볍다. 팬들과의 소통, 일상의 기록, 순수한 재미가 시작점이다. 그런데 구독자가 늘고, 광고 수익이 발생하고, 개인 채널이 하나의 '미디어'로 인식되는 순간부터 상황이 달라진다.
카메라 앞에서 던진 가벼운 농담 한 줄이 기사 제목이 되고, 편집 과정에서 왜곡된 맥락이 논란의 씨앗이 되며, 사생활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작은 이슈도 확대 재생산되어 걷잡을 수 없는 논란으로 번진다.
이 지점에서 대부분의 콘텐츠가 중단되고, 크리에이터는 지치고, 채널은 조용히 사라진다. 성공할수록 더 위험해지는 역설적 구조가 스포츠 콘텐츠 생태계의 가장 큰 함정이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
기존 방송국에는 시스템이 있다. 논란이 발생하면 홍보팀이 움직이고, 보도자료가 배포되며, 공보 담당자가 기자들에게 상황을 설명한다. 출연자는 직접 해명에 나설 필요가 없다. 조직이 개인을 보호하는 구조가 작동한다.
하지만 개인 크리에이터는 다르다. 기획부터 촬영, 편집, 업로드, 댓글 관리는 물론이고, 위기 상황에서의 해명과 대응까지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 전문성이 필요한 PR 업무를 비전문가가 떠맡게 되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그래서 대다수의 크리에이터는 논란이 터지면 침묵을 선택한다. 하지만 이 침묵은 더 큰 오해와 추측을 낳고, 결국 채널의 종료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든다.전직 축구선수 박주호의 '캡틴 파추호' 유튜브 채널
채널도 브랜드다, 이제는 소통이 답이다
최근 야구와 축구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은퇴 선수들부터 열정적인 팬들까지 너도나도 채널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콘텐츠 기획에만 집중하고, 정작 중요한 소통 전략은 놓치고 있다.
개인 크리에이터의 채널도 엄연한 브랜드다. 구독자는 고객이고, 크리에이터는 브랜드의 얼굴이다. 특히 스포츠는 감정적 몰입도가 높은 분야라 잘못된 한 마디가 전체 팬층을 적으로 돌릴 수 있다. 반대로 진솔한 소통은 더 강한 충성도를 만들어낸다.
현재 스포츠 콘텐츠가 중간에 멈추는 가장 큰 이유는 실력 부족이 아니라 소통 시스템의 부재다. 콘텐츠는 잘 만들지만, 위기 관리는 전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장 간단한 해답: 그냥 솔직하게 말하라
복잡한 PR 전략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직접, 솔직하게 소통하는 것이다.
실수했으면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네요"라고 하라. 길고 복잡한 변명보다 이 한 마디가 훨씬 강력하다. 팬들은 완벽한 크리에이터가 아니라 진짜 사람을 원한다.
논란이 터져도 바로 다음 콘텐츠를 올리지 마라. 잠시 멈추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라.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팬들에게 물어보라. 댓글을 읽고, 피드백을 받아들이고, 실제로 반영하라.
평상시에도 팬들과 꾸준히 소통하라.일상을 나누고 감사 인사를 하라. 그래야 위기 때 팬들이 편들어준다.
말하지 않으면 지워지고, 말하면 남는다. 복잡한 시스템보다 먼저 솔직하게 말하는 연습부터 시작하라. 그것만으로도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된다.
채널이 성장했다면 고려해볼 체계적 접근
재미로 시작한 스포츠 콘텐츠가 잘 돼서 채널이 성장했다면, 한번쯤은 아래 시스템 구축을 고려해보자.
-위기 커뮤니케이션 전략
논란 발생 시 어떤 메시지로, 언제, 어떤 채널을 통해 대응할 것인가
사과문 작성법과 타이밍, 그리고 후속 조치 계획
-루머 대응 시스템
악성 루머나 가짜뉴스 확산 시 누가, 어떻게 방어할 것인가
팩트체크와 반박 자료 준비, 법적 대응 방안
-브랜드 아이덴티티 구축
채널의 고유한 가치와 메시지는 무엇인가
어떤 이미지로 기억되고 싶은가, 어떤 차별점을 가질 것인가
-스테이크홀더 관리
팬층, 스폰서, 동료 크리에이터, 미디어와의 관계 설정
각 그룹별 맞춤형 커뮤니케이션 전략 수립
글, 스포츠칼럼니스트 이우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