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전폭 지원으로 ‘속도전’
테슬라 옵티머스 젠1 이후 개발 붐
젠슨 황 “로봇의 ‘챗GPT 순간’ 도래”
中 세계 첫 로봇격투·마라톤 열기도
“韓, 美·中과 1년~1년6개월 기술격차”
풍부한 데이터·고른 산업 기반 강점
정부, 로봇일상화 대비 전략 밑그림
40여 기업·대학 AI모델 개발 잰걸음
“품질·가격 경쟁력으로 시장 공략을”
지난 4월 중국에서는 세계 최초 휴머노이드 로봇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지난달에는 세계 처음으로 로봇 격투 대회도 개최했다. 미국 기업 피겨AI도 올해 사람이 장 본 물건을 로봇 두 대가 서로 상의하듯 냉장고에 척척 분류해 넣는 영상을 공개해 화제가 됐다. 테슬라가 만든 옵티머스는 로봇계의 슈퍼스타다. 미·중의 화려한 휴머노이드 시연을 보고 나면, 한국은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인상이 들 수밖에 없다.
휴머노이드 담당 부처와 전문가들은 한국이 단기 역전은 힘들더라도 선두주자를 따라잡을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평가한다. 정부는 최근 ‘K휴머노이드 연합’을 결성하는 등 전격 지원에 나섰다.
미국 로봇 기업 앱트로닉의 휴머노이드 ‘아폴로’
◆한국, 로봇 선두그룹과 기술격차
휴머노이드는 피지컬 인공지능(AI)의 한 종류로, 인간과 닮은 형태·기능을 가진 로봇이다. 복잡하고 수시로 변하는 현실에 인간처럼 잘 적응해서 반응하고 양손으로 물체를 정교하게 조작하는 능력을 갖췄으며 다양한 일에 쓰일 수 있는 범용성이 특징이다.
최근 AI 발전으로 휴머노이드 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한국로봇학회장인 김정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교수는 “현재 기술적으로 두 가지가 해결된 것 같다”며 “강화학습 기법이 생기면서 수백만번의 시뮬레이션을 거쳐 보행이 가능해졌고 중국의 희토류를 이용한 자석이 나와 모터 힘이 세진 덕분에 어느 정도 볼 만한 동작을 하고 외형도 사람 정도로 커졌다”고 설명했다.
2023년 테슬라가 옵티머스 젠1을 내놓은 후 지난해 미·중 기업들은 앞다퉈 새 휴머노이드와 로봇용 AI 모델, 제조 현장 실증, 투자 유치 성과를 발표했다. 올해는 엔비디아가 개발 플랫폼 ‘코스모스’를 발표하는 등 휴머노이드 붐에 불을 지피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1월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박람회인 ‘CES 2025’에서 “로봇의 ‘챗GPT 모멘트(순간)’가 오고 있다”고 말한 데 이어 3월 자사의 개발자 회의인 GTC 2025에서 “몇 년 뒤 휴머노이드 로봇이 돌아다니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IT계 새 격전지인 휴머노이드 분야에서 한국은 후발주자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은 2022년 기준 한국의 첨단로봇·제조 기술 수준이 미국의 80∼85%로 2∼2.5년의 격차가 있다고 평가했다. 로봇기업 에이로봇의 최고기술책임자(CTO)인 한재권 한양대 로봇공학과 교수는 “중국 기업들이 1년 전에 한 걸 에이로봇도 하고 있다”며 “현재 한국의 휴머노이드 기술은 미국에 1년 반 정도, 중국과는 1년 안쪽으로 뒤처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휴머노이드형 로봇 시장에서 북미 지역 매출은 52.2%에 달했다. 모건스탠리는 올해 2월 보고서에서 최근 5년간 출원된 휴머노이드 관련 특허 건수는 중국 5688건, 미국 1483건, 일본 1195건이라고 발표했다. 한국은 368건에 그쳤다.
그럼에도 한국형 휴머노이드 개발은 절실한 과제다.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뿐 아니라 인구절벽으로 산업 현장의 일손 부족이 심각해서다. 김 교수는 “우리 산업 구조를 유지하려면 로봇 기술이 필요하다”며 “로봇과 사람을 합쳐서 산업 현장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한 교수도 “제조업 현장은 일할 사람이 없어서 난리라 휴머노이드 개발 필요성을 더 느끼고 있다”며 “실제 수요 기업이 많이 생기고 있다”고 전했다.
로봇은 산업 안보와도 직결된다. 휴머노이드는 단순히 짜인 프로그램을 수행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현장에 쌓인 암묵지(말·글로 기록할 수 없는 지식)를 학습해 일부 공정을 맡길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목표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 경우 로봇에 사람의 노하우가 저장될 수 있다”며 “해외 로봇을 쓰게 되면 통신망을 타고 제조 현장의 데이터가 타국에 다 넘어갈 수 있다. 제조 AI와 휴머노이드 분야는 소버린(주권)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풍부한 데이터·고른 산업 발달 ‘강점’
휴머노이드 개발에서 한국의 강점은 풍부한 데이터와 고른 산업 기반이다. 한 교수는 “휴머노이드가 범용성을 가지려면 핵심은 AI이고 AI의 경쟁력은 좋은 데이터에서 나온다”며 “우리는 다양한 산업 현장에 많은 데이터가 쌓여 있다”고 했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한국은 2023년 기준 로봇 밀도가 직원 1만명당 1012대로 세계 1위다.
테슬라 ‘옵티머스’
휴머노이드 관련 산업 기반도 탄탄하다. 과기부 관계자는 “한국은 배터리, 반도체, 센서, 모터, 액추에이터 등 로봇 요소 기술이 상위권이라 개발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며 “단순 반복작업용인 1세대, 인간·로봇 협업용인 2세대 휴머노이드에서는 판도를 뒤집기 힘들겠지만 15년 후쯤 3세대 휴머노이드가 등장할 때 미·중 수준까지 가기에는 늦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휴머노이드는 융합연구”라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다 잘하는 융합 인재가 한국에 충분히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처럼 여러 부품이 갖춰진 나라가 많지 않다”며 “미국에서도 이게 어렵다. 미국 유학 시절 한국에 날아와서 기계를 가공해가는 비용이 더 저렴했을 정도”라고 전했다.
산업이 고루 발달한 만큼 한국은 제조 현장의 수백, 수천가지 공정 중 휴머노이드에 맡기기에 최적인 일을 찾는 데도 유리하다. 한 교수는 “이런 디테일 싸움에 들어갔을 때 한국이 할 만한 영역이 있다”며 “테슬라가 지금 하는 것도 자동차 공장에서 옵티머스가 어떤 공정이 가능한지 찾아서 훈련시키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유비테크 ‘워커X’
◆정부, 30·40년 세계 최상위 목표
정부도 ‘휴머노이드 강국’을 목표로 팔을 걷어붙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4월 ‘K휴머노이드 연합’을 출범시키며 출사표를 냈다. 40개 기업·대학이 모인 드림팀인 K휴머노이드 연합은 2028년까지 로봇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하드웨어 면에서는 2028년까지 60㎏ 이하의 가벼운 무게, 관절 수 50개 이상의 높은 자유도, 20㎏ 이상을 들 수 있는 힘, 초속 2.5m 이상 이동속도를 갖춘 로봇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미래 기술 선점에 나섰다. 2040년 범용 인간형 로봇이 일상화될 시대에 대비해 9대 기술 개발 전략을 지난달 29일 발표했다. 사전·사후 학습이 아닌 실제 환경에서 로봇 몸을 이용해 직접 경험하고 배우는 피지컬 AI 모델, 중앙에서 제어하지 않아도 로봇들이 스스로 협의하고 작업을 나누는 기술, 인간의 표정과 시선을 읽고 먼저 돕는 능력, 로봇이 스스로 이상을 감지하고 부품을 교체·복구하는 기술 등이 제시됐다.
다만 휴머노이드 강국이 되기까지 넘어야 할 과제도 많다. 한 교수는 “한국은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갖지 못한 것이 약점”이라며 “챗GPT는 못 만들었어도 데이터가 많은 만큼 로봇 특화 기반모델(RFM·로봇용 파운데이션 모델)은 의지를 가지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중국과 비교해 가격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며 “기술은 도긴개긴이기에 이를 얼마에 어떤 품질로 만드느냐 겨루는 단계로 들어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대학에서 단기 성과에 매몰되기보다 긴 안목으로 기술 개발을 기다려주는 자세, 예산 확충, 의대로 쏠린 인재를 이공계로 돌리는 것도 해묵은 과제다. 김 교수는 “로봇은 모든 분야를 다 연구해야 하기에 4, 5년 정도는 아웃풋 없이 시행착오를 거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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