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종 연기과 19학번, 추영우 동기
외국인 배우 고충 있지만 연기 재미 커
“한국인 역할 맡을 때까지 연기할 것”
연극 ‘생추어리 시티’에 출연한 몽골 출신 배우 아마르볼드 [두산아트센터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타국에서 배우로 활동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주어진 역할은 언제나 ‘외국인’. 그 나라의 언어가 아무리 유창해도 ‘외국인 역할’이 필요하지 않다면, ‘선택’받기 어렵다. 특정 역할이 아니라면 한 화면 안에, 한 무대 안에 섞이기 어렵다는 인식은 여전해서다. 그런 이유로 배우들은 “외국인 배우에겐 늘 외국인 역할만 주어지는 것이 한계”라고 말한다.
몽골 출신 배우 아마르볼드(Amarbold·29)는 또 다른 지점에 서있다. 어느덧 ‘한국살이’ 9년 차.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을 졸업하고 이제 막 배우로 첫발을 디뎠다. 지난해 섰던 낭독극 ‘제일 가까운 화장실이 어디죠?’가 데뷔작이다. 그 사이 ‘거절의 경험’은 적지 않았다.
“어? 외국인 배우 필요하다니까요?”
오디션 현장에서 아마르볼드를 마주한 관계자들은 그의 얼굴을 보면, 이 말을 툭하니 던진다고 한다. 한국 작품에서 원하는 외국인은 ‘전형적인 서양인’의 외모이기 때문이다. 이중고와 다름없었다. 외국인 배우를 찾는 작품도 흔치 않은데, 아시아권 외국인은 서양인 배우보다 설 자리가 더 적다.
“나도 외국인이긴 한데…. 그런 생각이 들던 때도 있어요. 하지만 이런 이유가 배우 활동의 장애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아요. 어떤 작품에선 이런 외국인도 있다는 발상의 전환을 줄 수도 있으니까요.”
최근 두산아트센터에서 만난 아마르볼드는 외국인 배우로의 고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무대 위로 아마르볼드가 등장하면 관객들의 머리 위로 물음표와 느낌표가 동시에 오간다. 뚜렷한 이목구비, 이국적 느낌을 주나 한국인과 닮은 외모의 배우. 낯선 신인 배우를 마주한 관객들은 그에게서 외국인의 억양이 들릴 거라는 예상은 하지 못한다. 대사 한 줄에 쉴 새 없이 떠다니는 물음표 사이로, 불현듯 떠오른 느낌표조차 정답이 아닐 때가 많다. 일부 관객은 ‘외국인을 연기하는 한국인 배우’로 추측할 때도 있다. 지난달 관객과 만난 연극 ‘생추어리 시티’는 정확히 이 지점을 노렸다.
그를 만나 대화를 나누면 사람들은 또 한 번 놀란다. 익숙한 외모에 모국어 사용자 못지않은 유창한 한국어 때문이다. 아마르볼드는 “이번 연극에선 사실 한국인 배우들과는 다른 발음으로 관객에게 낯설게 다가서길 바랐다”며 “지금 당장 한국인의 억양과 발음을 구사한다는 것이 이 많은 대사 안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툰 한국어 설정은 이오진 연출가의 요구이기도 했다.
연극 ‘생추어리 시티’는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미등록 이민자’로 살아온 10대의 성장기를 그린다. 아마르볼드는 2막이 돼서야 등장하나, 그의 존재 자체가 이 연극의 또 하나의 키다. 아마르볼드는 연극에서 잘 자란 변호사 이민자이자, B의 동성 연인 헨리를 연기한다. 과거엔 불안정한 이주민이었지만, 현재는 미국에 완전히 정착해 메인스트림으로 유입된 인물이다.
“헨리 역은 한국인이 아닌 배우가 맡았으면 좋겠다”는 연출가의 판단에 두산아트센터 제작 PD들은 외국인 배우를 수소문했다. “한국어에 능숙하고, 무대 연기가 가능하면서도 한국 원주민이 아닌 감각을 가진 외국인 배우를 섭외해야 한다”는 특명이었다. 제작진은 “이주민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불안정한 체류 자격을 다루는 작품인 만큼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민이 무대에 등장하는 것이 작품의 맥락과 밀접하게 닿아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연극 ‘생추어리 시티’에 출연한 몽골 출신 배우 아마르볼드 [두산아트센터 제공]
‘이민자’ 이야기는 그에게 모든 순간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그의 한국살이 역시 ‘비자 문제’가 너무나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에 함께 하기 위해 그는 E-6-1 비자를 발급받아 무대에 올랐다. 한국 내에서 90일 이상 장기 거주하면서 수익이 따르는 예술 활동이나 전문 방송 연기, 전문 연예 활동을 하려는 경우에 발급받는 비자다.
아마르볼드가 한국 땅을 처음 밟은 것은 지난 2015년 열린 브레이크 댄스 국제대회에 몽골 국가대표 자격으로 참석하면서다. 이 경험은 그를 한국 유학으로 이끌며 지난 2017년 본격적인 한국살이가 시작됐다. 당시 그는 한양대 어학원에 다니며 건대입구역에서 춤을 배웠다.
그는 “몽골에서 춤을 출 때 어린 시절 함께 시작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개인의 삶으로 돌아가는 친구들이 많았다”며 “춤을 놓고 싶지 않았고, 내 안의 불씨가 꺼지게 방치하고 싶지 않아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갖춰진 한국으로 유학을 오게 됐다”고 돌아봤다.
그 시절 그에겐 한국어 수업도 춤도 생존 그 자체였다. 한국에서 춤을 추고 브레이크 댄스 동작을 배우는 동안 오른쪽 어깨와 손목을 다치는 등 예기치 않은 부상도 이어졌다. 아마르볼드는 “회복할 수 있는 부상이었지만, 한국에서 지내며 다른 길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다”고 한다. 고민과 동시에 길은 보였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건대입구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던 중 “더는 춤을 못 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하지만 창작에 대한 욕심을 놓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연기로 접어든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연기는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 내는 분야인 데다, 죽을 때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 길로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입시를 준비했다. 기왕이면 최고의 학교에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인터넷을 뒤져 정보를 찾은 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지원했다. 그는 “당시 한예종 영화과에 몽골 학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돼 먼저 연락해 이것저것 물어봤다”며 당시를 돌아봤다. 한예종 연기과 19학번, 넷플릭스 시리즈 ‘중증외상센터’의 추영우, MBC ‘바니와 오빠들’의 이채민이 그의 동기다.
춤만 추던 그에게 연기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다. 아마르볼드는 “춤을 출 땐 말을 안해도 되지만 연기는 말, 행동, 눈빛까지 중요하지 않은 게 없어 배워야 할 것이 많았다”고 했다. 철학과 심리 분야까지 공부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무엇보다 그에게 한국어는 ‘생존’이었다.
“ 처음엔 편의점에 가서 계산하려 해도 언어의 장벽을 느끼니, 필사적으로 배웠어요. 몽골어와 한국어는 어순이 같아 배우기에 영어보단 수월했지만, 배우로의 언어 구사력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어요.”
한국의 관객들은 깐깐하다. 무대 위 배우의 발성과 발음, 억양이 귀에 낯설면 가차 없이 꾸짖는다. 국적을 불문한 지적이다. 그는 “전엔 외국인이라서 딕션을 지적받나 했는데, 한국인 배우들도 같은 지적을 받는 걸 보니 관객들이 얼마나 억양과 발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게 됐다”고 했다.
몽골에선 아버지의 이름이 성이 된다. 그의 풀네임은 간수크 아마르볼드. ‘편안하고 평온하고 강인하다’는 뜻이다. 배우는 선택받아야 하는 직업이다. 그렇기에 미래를 섣불리 예측할 수 없다. 그는 그 길을 평온하고 강인하게 걸어 나갈 생각이다.
“연기를 시작한 이후 핸드폰을 안 봐도 될 정도로 일상이 재밌어졌어요. 전 일을 많이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다양한 역할을 다양한 얼굴로 수행할 수 있는 배우이고 싶고요. 언제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 한국인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을 위해 계속 걸어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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