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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뉴스]계단 놔두고 왜 그렇게 힘들게 벽을 타고 다니는 거야?

온카뱅크관리자

2025-03-05 11:35:12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동그란의 마음극장 영화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No Love L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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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g alt="영화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제공"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3/05/hani/20250305113513383jnxl.jpg" data-org-width="970" dmcf-mid="UyEXydiBZ6"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3/05/hani/20250305113513383jnxl.jpg" width="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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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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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갑고 딱딱한 껍질 속에 잔뜩 바람을 머금고 있는 공이라는 녀석을, 사람들은 뭐가 좋다고 끊임없이 좇아가는지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딱 그 공과 닮았어요. 사랑이란 게 말이죠. 어디서 갑자기 날아와 내 뒤통수를 칠지, 눈앞을 맴돌다가도 언제 어디로 사라져버릴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는 점에서요. 잡으려 애를 쓰면 놀리듯이 달아나고, 피하려고 하면 제대로 펀치 맛을 보여주지요. 사람들도 참 이상하지요. 기껏 손에 들어온 그 녀석을 가만히 놓아두지를 못하더라고요. 그물망 속에 집어넣으려 기를 쓰거나 누군가를 향해 던지거나(되돌려 줄 거라는 걸 절대 의심하지 않고), 하다못해 벽이나 바닥이랑 주고받기라도 하지요. 밀어내도 다시 돌아온다는 걸, 도망쳐도 찾아내고 만다는 걸 매 순간 확인하지 않으면 잠시도 견딜 수 없다는 듯이요.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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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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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에르완 르 뒥 감독, 2025년)속 에티엔은 평생 공을 쫓아다녔지만 멀리 가진 못했어요. 에티엔이 덧칠하고 또 덧칠하던 축구경기장의 경계선처럼 그의 삶엔 분명한 테두리가 있었지요. 반면 늘 같은 자리에서 에티엔의 공을 받아주고 장난스레 색깔을 입혀주며 에티엔을 쉬게 해줄 것 같던 발레리에게 삶이라는 캔버스는 경계가 없는 것이었죠. 에티엔과 발레리 사이에서 딸 로자가 태어나자, 발레리는 영영 튕겨져 나가버리고, 에티엔은 쳇바퀴 같은 일상을 지키며 로자를 키워내지요. 그렇게 17년의 시간이 흐르고 에티엔이 로자를 떠나보낼 준비를 할 때, 에티엔의 기억 속에서 어린 로자의 질문 하나가 떠오릅니다. 로자는 아빠에게 단 한번 엄마에 대해 물어봤어요. “아직도 엄마를 사랑해?” 그때 에티엔은 이렇게 답했죠.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순 없어.” 그때 로자가 또 무슨 질문을 했고, 아빠는 이렇게 답했어요. “그건 불가능해.” 로자의 질문이 뭐였는지 정확히 생각나지가 않는데, ‘아빠도 나를 떠날 거야? 또는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였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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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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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가 어떤 질문을 던져도 확고한 사랑을 되돌려줘야 하는 부모의 역할에도 한계는 있는 것일까요? 에티엔은 부모님이 물려준 집을 부동산에 내놓고, 로자는 미술학교로 보내고 자신은 여자친구 엘렌과 새 출발을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순탄하게 풀리지 않아요. “난 이 집에서 몇 년 더 지내고 싶어.” 로자는 아직 떠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지요. 실은 에티엔도 마찬가지고요. 에티엔이 17년간 로자와 함께 살아온 집, 에티엔도 로자도 서로를 떠나보낼 때가 되었다는 걸 알지만 막상 떠나기 망설여지는 그 집을 생각하면 저에게도 떠오르는 공간이 있어요. 지금은 흔적도 찾을 수 없게 되었지만, 어느 날 무슨 힘에 의해서인지 아주 멀리 어디론가로 튕겨져 나간 그 사람이 어쩌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하나가 지탱하던 그 집이 생생하게 떠올랐어요. 그리고 로자의 방에 공공연하게 숨어들던 소년 유슈프에게서 내 어린 시절의 고민을 보았어요. 영화에 나온 모든 인물이 내 과거의 조각들을 조금씩 품고 있으니 모두에게 감정이입을 하느라 여러 장면을 놓치게 되었어요. 그렇지만 괜찮아요. 튕겨져 나갔다가도 돌아오는 게 마음이라는 공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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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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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일곱 살 로자의 방에 도둑처럼 숨어들어 자고 가던 유세프. 생각할수록 웃음이 나는 캐릭터예요. 그의 존재를 아빠 에티엔은 물론 동네 사람들도 다 아는데 매번 힘들게 벽 타기를 하며 드나드는 그에게 어느 날 에티엔이 물어보죠. 왜 계단 놔두고 그렇게 힘들게 다니는 거냐고. 그때 유슈프의 대답이 걸작이에요. “로자에게 모험적인 남자로 보이려고요.”(이 대목에서, 돌아올 공을 왜 자꾸 힘들게 차는 거냐고 유슈프를 대신해 에티엔에게 묻고 싶었어요.) 중세시절의 궁중연애처럼, 마치 기사가 귀부인을 찾아오듯이, 실질이 없이 형식만 요란한 그의 방문이 참 귀여워 보였어요. 유슈프는 어느 날 아침식탁에서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한탄해요. “우리 엄마 아빠는 서로를 아끼고 나를 사랑해.” 서사시를 쓰고 있는 유슈프에게는 자신의 삶에 비극적 요소가 없다는 게 커다란 결핍인 거죠. 그는 에티엔과 로자의 삶이 발레리의 부재로 인해 비극이 되었다면서 그들의 사연에 영감을 받아 서사시를 써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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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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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사람들은 모두가 다르고 새로운 존재인 것 같지만 다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의 원형을 추구하며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요. 에티엔이 네모난 축구장의 경계선을 그리고 또 그리듯이, 로자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붓질을 하며 자기 삶의 캔버스를 확장해 나가듯이, 유슈프가 중세시절의 궁중연애를 사랑의 모형으로 삼아 자기는 경험한 적도 그 의미를 알 수도 없는 비극을 꾸며 나가듯이요. 택시 운전사 엘렌은 언젠가 에티엔이 자신의 삶에 탑승할 날을 순간을 기다리며 계속 대기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고요. 관객의 눈에는 이들의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다 아는 이야기로도 보이고, 낯설게도 보여요. 손에 쥘 수 없는데 놓칠 수도 없는 공을 가지고 유한한 인생이라는 경기장 안에서 펼치는 한나절 동안의 게임 같다고 할까요. 삶이라는 경기장 안에 함께 있지만 모두가 저마다 자기 마음속에 갖고 있는 다른 밑그림이 다 달라요. 어디서 시작됐는지, 어떻게 그려지고 무엇으로 완성되는지도 알지 못하는 채 매 순간 덧칠하고 또 지워가며 한편의 대서사시를, 한폭의 그림을 만들어 나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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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엣나인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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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여정에서 자기 길의 출처를 조금씩 발견해 가는 동시에 또 누군가의 길에 참고가 되고 출처가 될 나의 시간을 써나가는 것이 인생인지도 몰라요. 그것을 이끄는 힘은 결국 사랑이고요. 소년 유슈프의 그 모험적인 방문들이 에티엔의 새로운 출발에 영감이자 출처가 되어주던 엔딩 장면이 그토록 유쾌했던 이유를 이 글을 쓰면서 깨닫게 되네요. 내 마음이 놓아주지도 끌어안지도 못하는 상처 많은 공이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나와 우리를 어디론가로 이끌고 있다는 것을 믿어요. 영화 칼럼니스트 이하영 ha02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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