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 양궁 대표팀 전훈영(왼쪽부터), 임시현, 남수현이 28일(현지시각) 프랑스 레쟁발리드 양궁 경기장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양궁 여자단체 결승전 중국과 경기에서 하이파이브하고 있다. 파리/연합뉴스 한국 여자 양궁 대표팀이 또 한 번 불멸을 쐈다. 올림픽 10연패. 양궁 단체전이 처음 올림픽에 등장한 1988 서울올림픽을 시작으로 2024 파리올림픽까지 단 한 차례도 금메달을 놓치지 않았다.
10번에 달하는 올림픽을 치르는 동안 한국 양궁이 최강 자리를 유지하는 이유는 뭘까. 먼저 과학적인 훈련 방식이 이유로 꼽힌다. 특히 한국 양궁은 대회 전부터 현지 경기장을 그대로 재현한 훈련장을 진천선수촌에 마련해 미리 현지 적응력을 높여왔다. 이번에도 대한양궁협회는 파리올림픽 경기장의 실제 조감도를 100%로 반영한 훈련장을 선수촌에 마련했다. 간판 등 시설물도 그대로 복사했고, 선수들이 경기장에 출입하며 언론과 만나는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 등 동선까지도 가져왔다. 여기에 장내 아나운서 멘트, 관객 환호성, 소음 등도 프랑스와 영어로 재현했다.
자연환경도 예외는 아니다. 양궁대표팀은 그간 올림픽 때마다 각 경기장이 위치한 곳의 지리, 지형은 물론 날씨까지 고려해 실전 훈련을 했다. 파리올림픽을 앞두고는 센강의 바람을 고려해 여주 남한강에서 바람 적응 훈련을 하기도 했다. 올림픽 양궁 경기장인 레쟁발리드 경기장은 나폴레옹 묘지가 있는 앵발리드와 센강 사이에 직선거리로 약 200∼300m 떨어져 있는데, 바람 훈련이 진행된 강변 훈련장의 바람 세기와 방향이 파리 센강과 비슷하고 강으로부터 약 300m 거리라는 점 등 입지 조건까지 분석해 훈련 장소를 정했다.
정신력 싸움이 중요한 종목 특성상 심리적 훈련도 병행한다. 심리 훈련을 위해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김영숙 박사의 지도를 받았고, 일상생활과 대회 부담감을 다루기 위해 정신과 전문의 김영돈 원장의 도움을 수시로 받았다. 올해부터는 연세대학교 김주환 교수의 지도로 호흡 훈련과 회복 탄력성을 높이는 명상 훈련도 시작했다. 또한 실제 경기장에서 느낄 압박감과 소음 등을 견딜 수 있도록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관중들의 북소리와 응원을 들으며 실전과 동일한 23분의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한국 여자 양궁 대표팀 임시현이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소음 적응 훈련을 하고 있다. 대한양궁협회 제공 파리올림픽을 앞두고는 특별히 후원사인 현대차그룹이 개발한 인공지능(AI) 양궁로봇과의 훈련도 진행했다. 아무리 실전과 비슷한 환경을 만든다고 해도 실제 메달을 걸고 벌어지는 올림픽 경기의 압박감을 훈련장에서 느끼기는 어렵다. 이에 협회는 센서로 바람 방향과 세기를 파악해 화살을 쏘는 양궁로봇을 준비했다. 양궁로봇은 인간이 느끼는 동요나 집중력 저하 등의 변수가 없었고, 대표팀 훈련에 압박감과 활력을 불어넣었다. 대표팀 임시현(21)은 “양궁 로봇이 100% 10점만 쏜다는 사실에 압박감을 느꼈다”며 “실전에서 느꼈던 긴장감이었다”고 했다.
양궁 국가대표 선발 과정의 공정함과 투명성도 이유로 꼽힌다. 양궁은 다른 주력 종목과 달리 국가대표 선발과정에서 잡음이 발생한 적이 없다. 내부 경쟁은 치열하지만, 명성이나 인맥 등이 작동할 수 없기 때문에 오로지 실력으로만 대표를 뽑는다는 믿음이 있다. 실제 3차례 선발전과 2차례 최종 평가전 끝에 꾸린 이번 여자 양궁 대표팀은 올림픽 3관왕을 차지했던 안산을 비롯해 도쿄올림픽 멤버가 전원 교체될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지만, 투명한 과정 덕분에 이후에도 팀 내 끈끈함이 유지되며 성과를 낼 수 있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