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 프리즘]
첨단산업 지원 공약, 각론에서 차이 보여
AI 예산 늘리자는 이재명
과학인 처우 개선하자는 김문수
외국인 노동자 임금 차등화하자는 이준석
제21대 대통령 선출을 위한 공식 선거운동 이틀째인 13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사진 왼쪽부터)가 대구광역시 동성로 거리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가 울산 남구 신정시장에서,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 후보가 대구 경북대학교에서 집중 유세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6·3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대선 공약에서 인공지능(AI) 기술 개발 지원에 힘을 줬다. AI가 한국의 미래 먹거리라는 두 후보의 인식은 같았지만, 접근론은 달랐다.
이재명 후보는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5만장 확보와 ‘모두의 AI’ 프로젝트 추진 등 정부 주도 AI 개발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한 반면, 김문수 후보는 ‘AI 청년 인재 20만명 양성’ ‘과학기술인 처우 개선’ 등 인적 자원 확보를 중심으로 기업 활동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개혁신당의 이준석 후보는 AI 분야를 공약집에 담지는 않았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이준석 후보의 정치 철학이 반영된 것이란 해석이다. AI와 같은 기술 개발은 기업의 역할이고, 기술 개발을 제한하는 규제를 개혁하는 게 새 정부의 역할이란 게 이준석 후보의 과학기술 및 경제산업 공약의 근간이다.
AI가 미래 산업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건 정치권뿐만 아니라 산업·과학계도 동의한다. 다만 국민 이용권 확보를 우선시하는 ‘공공성’을 강조해야 할지, 초격차 기술력을 추구하는 ‘배타적 혁신성’을 도모해야 하는지엔 대해선 시각이 엇갈린다.
이재명 후보와 김문수 후보의 AI 공약에선 정확한 재원 소요가 빠져 있다. 정부가 AI 개발에 투자할 수 있는 재정 여력은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고, 어느 정도의 재원을 쏟아부을지 공약으로 제시해 사회적 합의를 밟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명확한 목표 내건 이재명, 선진국 비중만큼 AI 예산 투자
16일 정치권에 따르면 세 후보는 공식 선거 운동 기간 개시와 함께 10대 공약을 발표했다. 이재명 후보는 정책 순위 1번으로 ‘세계를 선도하는 경제 강국’을 내세웠다. AI 등 첨단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집중 육성해 새로운 성장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6·3 대통령선거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12일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열린 출정식 및 첫 유세에서 후보 연설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재명 후보가 제시한 첫 번째 슬로건은 ‘인공지능 대전환’(AX)이다. AI 예산 비중을 선진국 수준 이상으로 증액하고, 민간 투자 100조원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예산을 얼마나 늘리게 될 까. 정부는 올해 AI 예산을 당초 1조8000억원으로 잡았는데, 지난달 추가경정예산이 더해지면서 총 3조6000억원이 됐다. 본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53%에 달한다.
미국의 AI 예산은 2025회계연도(2024년 10월~2025년 9월) 기준으로 전체 예산의 0.27%(200억달러·약 28조3400억원)다. 규모로 따지면 한국의 AI 예산은 미국의 8분의 1 수준이지만, 비중으로 비교하면 우위에 있다.
중국의 경우 규모와 비중 모두 한국보다 큰 상황이다. 중국은 올해 AI와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 지원에 전체 예산의 0.68%(1917억위안·약 38조원)를 책정했다.
만약 중국보다 소폭 높은 ‘비중 0.7%’로 AI 관련 예산을 편성한다면 그 규모는 올해 본예산 기준 4조7000억원가량이다. 현재 예산(3조6000억원)보다 1조1000억원을 AI에 추가로 투입해야 한다는 얘기다.
해당 금액은 이재명 후보가 구체적으로 숫자를 제시한 ‘GPU 5만장 확보’ 재원 등으로 쓰일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정부는 2025년 1차 추경에서 GPU 1만장을 확보하는 재원으로 1조5000억원을 편성한 바 있다. 이를 5만장으로 환산하면 예산을 기편성한 1만장을 제외하고 4만장을 추가 구입하는 데에만 6조원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 AI 강국의 씨앗, 과학인 챙기겠다는 김문수
김문수 후보의 AI 공약은 인적 자원 육성과 필수 인프라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업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은 ‘민관합동 펀드 100조원 조성’ 정도가 전부다. AI 개발의 주체는 민간 기업이며, 정부는 인적 자원과 과학 기술 개발에 중점을 두겠다는 보수 정부의 사고가 읽히는 대목이다.
AI 인적 자원 확보와 관련해, 김 후보는 AI 소프트웨어(SW) 대학원 및 중심 대학의 정원을 늘리고 해외 우수 인력 유치를 위해 인건비와 연구비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전 국민이 AI를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도 강화한다.
첨단 기술의 기반이 되는 과학 분야 투자도 집중한다. 우선 과학기술기본법을 개정하고 과학기술부총리와 과학특임대사를 신설하겠다고 했다. 과거 2004년 노무현 정부는 과학기술부 장관을 과기부총리로 겸직하게 했으나, 2008년 이명박 정부가 과기부를 교육부와 통합했다. 이후 과기부는 현재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부활했지만 부총리 직위는 사라졌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13일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과학인의 처우 개선도 추진한다. 우선 정부가 출연한 연구기관의 연구자 정년을 65세로 늘리고, 연구개발 직군의 연봉 표준을 상향하겠다고 했다. 과학기술인 공제회를 통한 지원책도 강화하겠다고 했다.
AI 산업과 관련해선 필수 인프라인 전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방안을 공약에 담았다. 핵심 전력원으로는 원전을 꼽았다. 건설 중이거나 계획 중인 대형 원전 6기를 계획대로 추진하고, 한국형 소형원전 상용화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산업용 전기료 인하도 공약에 담았다.
◇ 이준석의 기업 지원 방안은 외국인 최저임금 차등 적용
이준석 후보는 공약집에 AI 관련 내용을 담지 않았다. 이준석 후보의 산업 공약은 리쇼어링 촉진과 압도적 규제 혁파로 축약된다.
리쇼어링 촉진 방안으로 해외로 생산시설을 이전한 국내 기업이 울산·미포, 여수, 반월·시화, 온산, 창원, 구미 등 주요 국가산업단지로 복귀할 경우, 외국인 노동자 최저임금을 최장 10년간 차등 적용하는 것을 허용하겠다고 했다. 외국인에 대해선 내국인보다 더 낮은 최저임금을 지급해도 정부가 용인하겠다는 뜻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통령 후보가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12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가진 서울 첫 집중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뉴스1
기업에는 당근이지만, 한국이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111호(차별 임금 금지)에 어긋난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김문수 후보도 외국인 최저임금 차등 적용에는 고개를 저은 바 있다. 지난해 8월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김문수 당시 장관 후보자는 “외국인 근로자라는 이유만으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 하는 것은 헌법(평등권), 국제기준(ILO 111호), 국내 법(근로기준법·외국인고용법) 등과 배치되는 측면이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고임금이라는 장점이 사라지면,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을 찾을 이유가 사라지고, 이는 노동력 부족이라는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영수 한양대 교수는 “최저임금제는 동남아 청년들이 ‘코리안 드림’을 향해서 입국하는 동기”라며 “다른 나라가 최저임금제를 유지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한국도 이 제도를 (외국인 청년을 유치하기 위한) 전략상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준석 후보는 임금은 다소 낮아질 수 있지만, ‘외국인 노동자 전용 특수 비자’를 신설해 국내로 들어오는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최저임금보다 적게 주더라도 현지 임금보다는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기 때문에, 절차 간소화가 외국인 노동자에겐 더 유인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규제 혁파와 관련해선 국무총리 산하 ‘규제심판원’ 신설해 신청부터 특례 부여까지 원스톱 처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규제를 일시적으로 풀어 기술 개발 촉진을 유도하는 샌드박스의 특례기간을 현행 4년에서 최장 10년까지 연장하는 방안도 내놨다.
과학기술 개발과 관련해선 ‘연구자 연금 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달성한 과학기술인에게 포상금과 함께 매월 연금을 지급해 예우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과학기술인의 연구 의욕을 고취하고, 인재 유출을 방지하겠다는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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