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주간으로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노석준 RPA 건축연구소장 본인 제공
메타버스 간의 영역과 경계는 어떻게 정의될까?
인류의 역사에 기록된 모든 전쟁사는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한 영역 다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 이래로 인간에게 삶의 터전인 물리적 공간의 영역과 경계는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인간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세력을 확장하고자 물리적 공간을 넓혀왔고, 이를 위해 큰 노력과 희생을 대가로 치렀다.
중세 유럽의 봉건사회에서처럼 영주가 더 많은 영지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기도 하고, 국경을 확장하기 위해 국가와 국가가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이러한 전쟁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인간은 물리적 영역의 확장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모든 사회 구성원의 자원과 에너지를 쏟는 것을 반복했다.
오랜 기간 인간의 역사와 함께한 물리적 경계의 확장과 축소는 생존과 쟁취를 위한 본능과도 같았다. 이는 인간에게 주어진 물리적 공간이 분명한 한계를 가진 제한된 자원이라는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원하는 만큼 무한으로 공간을 확장할 수 있다면 굳이 피를 흘리는 희생을 치르며 남의 것을 빼앗지는 않는다.
최근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만 하더라도 그 바탕에는 이러한 영역 확장이라는 욕망이 깔려 있다. 미래에도 물리적 공간의 확대를 향한 인간의 욕망은 변하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발현될 것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가상 세계인 메타버스에서는 영역 확장의 욕망이 어떻게 나타날까? 현실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완벽한 디지털 가상 세계인 메타버스가 탄생한다면 그동안 역사 속에서 지속된 물리적 영역 확장의 다툼이 사라질까?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영역 확장을 위해 모든 것을 내걸고 치열하게 싸우게 될까? 영역과 경계는 무너지고 영향력만 남는다.
더 넓은 땅을 차지하고자 끊임없이 집단 간 경쟁하고, 물리적인 토지를 어떤 세력이 얼마만큼 점령하느냐에 따라 국경이 만들어졌다. 종교나 사상, 정치 등 다양한 명분으로 전쟁이 발생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늘 땅을 차지하거나 빼앗기면서 국경이 변화됐다.
국경과 같은 물리적 영역의 경계는 정신적 영역의 경계를 함께 만들었다. 물리적 영역의 경계 안에서 오랫동안 유지된 인간의 특정한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은 각 지역에서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전통, 사상을 만들었고, 이는 곧 정신적 영역의 경계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이러한 물리적, 정신적 영역의 경계는 메타버스라는 가상 세계에서 어떻게 변화될까?
메타버스는 말 그대로 가상 세계이기 때문에 물리적 개념으로서의 공간은 없다. 이런 이유로 메타버스에서 공간은 한계 없이 확장될 것이며, 덕분에 인간은 더욱 큰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거나 서로를 희생시키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가상공간이라고 해서 경쟁이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인간은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타버스는 공간이 무한대로 확장되는 속성이 있으므로 과거에 제한된 영토를 가지고 치열하게 영역 쟁탈을 하던 경쟁의 양상은 바뀔 수 있다.
과거에는 땅과 같은 물리적 영역이 중요했다면 미래에는 영향력의 크기가 중요한 세상이 될 것이다.
메타버스 세계에서 영향력이란, 얼마나 많은 사람이 특정 목적과 콘텐츠를 공유하기 위해 가상의 디지털 영토에 참여하는가를 의미한다. 디지털 가상 세계에서는 참여자의 물리적 위치는 중요하지 않다.
물리적, 정신적 영역의 경계도 그 의미가 사라진다. 그래서 어느 국가나 문화권에 소속돼 있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특정한 것에 공감하고 참여하게 하는가에 있다.
결국 이러한 영향력이 곧 디지털 메타버스 세계에서 가상적 영토의 크기가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 세계의 지도 위에 이러한 가상적 메타버스의 새로운 지도가 또 그려지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각 메타버스는 저마다의 영향력에 따라 위계가 형성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메타버스 간의 위계가 정해진다. 마치 유튜브 속 수많은 채널이 얼마나 많은 구독자와 조회수, 시청 시간을 갖느냐에 따라 영향력의 위계가 형성되는 것과 같은 구조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메타버스 세상의 영향력은 그 어느 시대보다 강력해질 것이다. 게다가 이 영향력은 과거의 물리적 영역처럼 고정돼 있지도 않다.
지속해 변화를 일으키며 확대되고 축소되는, 하나의 유기체적인 영역이 될 것이다.
메타버스의 승자와 패자
인류는 현실에서 제한된 자원인 대지를 기준으로 지리적이고 물리적인 영역 안에서 집단 간의 경쟁을 이어왔다. 그리고 대부분 전쟁을 통해 만들어진 힘의 역학 관계에 따라 각 영역과 경계를 만들었다.
물론 오늘날에는 거대한 국제기구의 감시와 강대국 간의 힘의 균형으로 국가 간의 전쟁은 최대한 지양하고 있다. 덕분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국가 간의 지리적 경계인 국경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
현실 세계의 국가 간 또는 집단 간의 역학 관계는 가상의 디지털 세상에서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진행될 것이다. 메타버스는 콜럼버스가 발견한 신대륙처럼 원래 주인도 없고 어떤 영향력도 만들어지지 않은 세상이다.
이러한 새로운 기회의 땅을 선점하기 위해, 그리고 더 큰 영향력을 갖기 위해 국가와 기업 그리고 개인까지 모두가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다.
메타버스 시대의 초입에 있는 지금도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기존의 사업에 메타버스를 융합함으로써 시장 선점을 꾀하고 있다. 애플, 구글, 아마존 등 최강의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스마트 안경, 헤드셋, 전자 상거래 지원 등으로 메타버스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테슬라는 차량 내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게임 플랫폼을 탑재함으로써 자율 주행 차량에서 즐기는 메타버스에 도전하기도 했다.
테슬라 게임 플랫폼 사진 출처 : 홈페이지 캡처
기존의 국가 간, 집단 간 물리적 영역 다툼의 결과가 '땅'의 확보라면, 메타버스 내에서 영향력 경쟁의 결과는 결국 '돈'이다.
인류의 미래 산업을 이끌어갈 테슬라, 스페이스X 등 여러 글로벌 빅테크 기업은 이미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부를 형성했다. 심지어 세계는 백만장자(millionaire), 억만장자(billionaire)를 넘어 세계 최초의 조만장자(trillionaire)가 될 인물로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를 주목하고 있다.
이처럼 전 세계의 돈이 일부 빅테크 기업으로 집중되는 현상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빅테크 기업이 본격적으로 메타버스 사업을 확장하고 전환한다면 그 시너지로 메타버스의 힘과 영향력은 현실 세계의 어느 국가들보다 커질 수도 있다.
한편, 메타버스는 무한한 기회의 세상인 만큼 놀라운 반전도 예측할 수 있다. 메타버스가 열어가는 신대륙 시대에는 선점에서 뒤지는 국가나 기업, 개인은 급기야 패배자로 전락할 수 있다.
심지어 현재의 현실 세계에서 최고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나 기업도 메타버스의 선점을 놓치거나 외면한다면 이후 맞게 될 메타버스 전성시대에 완전히 다른 운명을 맞닥뜨릴지 모른다.
노석준 RPA 건축연구소 소장
▲메타버스 및 가상현실 전문가 ▲ 미국 컬럼비아대ㆍ오하이오주립대ㆍ뉴욕 파슨스 건축학교 초빙교수 역임 ▲ 고려대 겸임교수 역임 ▲ 현대자동차그룹 서산 모빌리티 도시개발 도시 컨설팅 및 기획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